미국기업들의 분식회계가 세계경제의 최대 "암초"로 부상했다. 분식회계는 미 증시와 달러가치를 급락시키면서 "미국발 세계금융불안"의 근원이 되고 있다. 작년 10월 에너지거래업체인 엔론에서 시작된 "주식회사 미국"의 부패는 업종과 기업규모 우량.비우량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GE 마이크로소프트 GM IBM 제록스 등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까지 분식의혹을 받고 있을 정도다. 엔론 월드컴 K마트 글로벌크로싱 등 10여개는 분식회계의 여파로 이미 파산했거나 파산일보 직전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미 상장기업 5개중 1개꼴로 매출과 이익을 부풀리거나 손실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세계 5대 회계법인인 아더 앤더슨이 자사가 부실감사한 회계장부를 파기하는 불법을 저지르다 파멸의 길을 걷자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투명하다는 월가는 이제 분식회계의 온상으로 전락한 듯 하다. 때문에 뉴욕증시는 문을 열면 어떤 스캔들이 새롭게 터질지 투자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관련 루머가 나오면 주가는 즉시 곤두박질 치고 만다. 월드컴의 추가 부정회계 및 미 최대 제약사인 머크의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1일 뉴욕증시에 투매사태가 재연된 게 그 예다. 분식회계가 '9·11테러'보다 더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날 분식회계 확산 소식에 놀라 투매에 나섰고 나스닥지수는 4.06%(59.38) 폭락한 1,403.8로 밀렸다. 이는 작년 9·11테러때(1,460.7)보다 더 낮은 5년 만의 최저치다. 분식회계 스캔들이 9·11테러보다 증시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셈이다. 9·11테러에도 끄떡 없었던 '강한 달러'도 분식회계의 충격으로 10년 만에 '약한 달러'가 되고 말았다. 연초 달러당 1백35엔 및 유로당 0.83달러이던 달러가치는 현재 1백19엔 및 0.99달러로 10% 이상씩 하락했다 분식회계는 '미 증시 및 달러하락-미경제회복 저해-세계증시 침체 등 세계금융시장 불안-세계경제회복 지연'으로 비화되고 있다. 분식회계 스캔들로 세계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가 대책수립에 나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회계부정 기업을 '썩은 사과'로 규정,대대적인 회계개혁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미 의회도 분식회계방지 법안을 심의 중이고 미증권거래위원회(SEC)는 정부주도의 타율적인 회계법인감독 강화책을 수립했다. 세계펀드매니저협회와 무디스 등의 국제신용평가회사도 분식결산의 주요 원인인 과다한 스톡옵션과 경영진 보수의 억제책을 강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계방식과 함께 국제회계기준의 양대 산맥을 구성하고 있는 미 회계방식의 개혁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국제회계기준의 빅뱅(대변화)도 불가피해졌다. 미 기업들의 부정회계로 '미국=글로벌스탠더드'의 등식에도 금이 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세계가 미국을 세계화 표준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며 글로벌스탠더드의 탈(脫)미국화를 예상했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