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8강전이 벌어진 지난 22일 밤 광주 월드컵경기장. 경기장안에만 4만여명, 경기장밖에도 수십만명의 응원단이 몰려 지축을 울려댔지만 아무런 사고없이 '역사적인 밤'을 보냈다. 지난 18일 이탈리아와 건곤일척의 16강 경기나 앞서 14일 포르투갈과 16강 최종 진출전에서도 수백만명의 가두 응원단이 저지른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경기는 경기, 응원은 응원, 단결은 단결"이라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순간들이었다. 이런 광경은 전세계로 생중계됐다. CNN과 서방의 주요 통신, 유력 신문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드러난 한국의 선진 응원문화가 돋보였다"고 전했다. 일부 유럽언론은 "축구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곳곳에서 훌리건이 난동하곤 했지만 한국에서는 한명의 훌리건도 없었다"고 극찬했다. 승용차 2부제 운영이 소개됐고 가두응원뒤 자기 자리를 깨끗이 치우는 광경도 크게 보도됐다. 한국이 보인 질서와 절제에 세계가 놀랐다. 그러나 더 놀란 것은 한국인들 자신이 아닐까. 월드컵으로 나라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스페인. 1982년 월드컵 개최로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 국가'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그 자리에 그들은 산업국가, 관광국가, 문화국가라는 새 옷을 입혔다. 1983년 63억달러였던 스페인의 관광수익이 10년만인 지난 1993년 2백4억달러로 팽창한 사실, 관광객 세계 1위 관광수익률 세계 2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1998년 프랑스도 그랬다. 문화중심국 이미지에서 산업의 프랑스, 기술의 프랑스로 '뉴 프랑스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썼다. 내부적으로는 축구대표팀의 인종 구성만큼이나 다양한 다민족을 화합해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았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