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을 처음 맡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실력이 생각보다 출중해서도,반대로 세계 수준에 한참 못 미쳐서도 아니다. 선수들의 '순수한 열정'에 놀란 것이다. 월드컵 첫승과 16강 진출이 목숨 걸고 이뤄야 할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반했다. 어떻게 하면 몸값을 좀 올려볼까 머리를 굴리는 다른 나라 프로 선수들에게선 찾기 어려운 '축구의 냄새'를 그는 한국 선수들에게서 맡았다. 열정에 넘치는 추종자들은 리더를 변화시킨다. 리더에게 그들이 불어넣은 신념은 다시 팀 전체의 에너지로 고양된다. 폴로어십이 리더십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다. 2차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추종자들 보다 훨씬 뛰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얘기하면 위대한 리더의 위대한 업적은 절반 이상이 추종자들의 몫인 것이다. 세계 정상급 축구팀이라는 히딩크의 명확한 비전은 우리 선수들이 가능하다고 믿고 꼭 이루겠다고 노력한 결과 맺어가고 있는 결실이다. 사실 체력과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히딩크의 지적에 가장 불쾌해 했을 사람들은 바로 선수들 자신이다. 유럽과 일본 프로팀에서도 통하고 길게는 20년 넘게 운동해온 프로스타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에선 어떤가. 매일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팔러다니다온 영업사원들에게 "세일즈맨 정신이 없다"고 닥달하면 그것만큼 맥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추종자들은 불평불만주의자들과는 다르다. "정말 그런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보고 "진짜 그렇다"는 결론을 내리면 최선을 다해 리더를 따를 뿐이다. 한국팀이 꼭 그랬다. 휴가를 줘도 역기를 들었고,'복장 통일''휴대폰 금지'등 청소년들도 싫어할 잔소리도 지상 명령처럼 받아들였다. 우리 선수들의 예에서 보듯 추종자 정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리더가 제시한 목표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해석해 나름의 방식으로 완성하면 된다. 개인적 욕망 보다는 단체의 비전을 중시한다. 내 일만 하면 그만이라는 개인주의를 접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런 이들에겐 대충 때우는 날이란 없다. 피라미드의 받침돌 신세라 푸념하지 않고 자신이 든든한 기초라고 여긴다. 이런 이들은 수동적인 아랫사람이 아니다. 직책과 직급은 부하지만 마음가짐만은 사장이요 주인이요 감독이다. 바로 미래의 리더인 것이다. '마지막'이란 각오는 괜한 다짐이 아니다. 세계적 감독까지 영입한 이번에도 실패하면 한국 축구엔 미래가 없다는 현실 인식이 스스로를 벼랑으로 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키지 않아도 다짐했고 연습했고 이뤄내가고 있다. "길을 제시하는 것은 리더지만 길을 가는 방법을 만드는 것은 추종자"(유진 해베커)란 표현에 이보다 적합한 예는 없다. 축구 열기는 다시 시작됐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운동장마다 축구의 물결이 이어질 것이다. 1조5천억원을 들여 지어놓은 경기장들이 덩그라니 남아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투자비는 창의적인 추종자 정신과 신념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다. 미래의 태극전사를 꿈꾸는 사람들,그리고 열정의 스포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당으로 말이다. 그러니 승리 한번에,16강 여부에 일희일비할 일은 없다. 히딩크 말대로 그저 "게임을 즐기자.(Let's enjoy the game)"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