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실적을 기준으로 한 미국 경제잡지 포천지(誌)의 '세계 5백대 기업(Global 500)' 순위에는 모두 10개의 한국 기업이 올라 있다. 삼성전자가 매출액 3백84억9천만달러로 92위에 랭크됐고 현대종합상사(1백3위) 삼성물산(1백5위) SK주식회사(1백23위) LG상사(1백93위) 삼성생명(2백22위) LG전자(2백44위) 한국전력(3백위) SK글로벌(3백62위) 포스코(4백22위) 등이다. 미국의 또 다른 경제전문잡지인 포브스지의 순위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나온 '5백대 국제 기업(International 500)'이란 명단을 보면 삼성물산이 4백52억8천5백만달러 매출로 40위에 올랐고 현대종합상사(54위) 삼성전자(70위) LG상사(1백2위) LG전자(1백24위) 한국전력(1백48위) 현대자동차(1백51위) SK상사(1백81위) SK주식회사(2백11위) 포스코(2백15위) 등 모두 20개의 한국 기업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통계나 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보아 우리 기업들이 세계 정상급 기업 가운데 10~20%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황무지에서 각국 차관을 끌어모아 '공장'이란걸 짓기 시작한 때가 60년대 초반이니 40년 동안 이만큼 이룬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내수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중심으로 이뤄낸 성과이고 보면 우리 기업들의 저력은 가히 세계 정상급이라고 할 것이다. 개별 기업의 순위뿐만이 아니다. 업종별로 보더라도 반도체 조선 철강 등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고 자동차산업에선 5위 수준을, 석유화학분야에선 아시아 정상급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은 논외로 하더라도 '굴뚝산업'에서 선진강국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모는 충격적인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그리고 의연히 이어온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21세기 문턱으로 넘어서고도 아직 '미래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해 준비하지 못했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 답을 굳이 지금 갖고 있지 않은 산업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다시 말해 이미 세계 속에서 리딩 컴퍼니로 이름을 날리고 뿌리를 내린 이런 업체들에 우리의 미래를 맡긴다면 어떨까. 특히 반도체 분야의 삼성전자, 철강의 포스코, 자동차업종의 현대자동차, 그리고 조선부문 등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질적인 '점프'만 한다면 한동안 세계 해당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거나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 90년대 초 64메가D램을 세계 처음 개발한 이후 2백56메가, 1기가, 4기가 D램 등 4세대 연속 세계 최초 개발 기록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투자가들의 관심거리인 초우량 회사다. 수익력의 포스코는 또 어떤가. US스틸은 물론 일본 신일철까지 제친지 이미 오래다. 현대자동차는 '몰아보면 믿게 된다'(Driving is believing)는 자신감 넘치는 광고 카피를 앞세워 그랜저XG 쏘나타 등 일본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미국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체들은 수년치 물량을 이미 확보해 놓았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이들 우량 기업은 수출로 달러를 벌어 오는 것은 물론 국내 관련 업계를 선도하며 시장을 창출해 내고 있다. '황금의 땅'으로 인식되는 아시아 최대의 시장인 중국 공략을 선도하는 것도 이들이다. 일본 업체들의 견제를 뿌리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경쟁력은 품질관리와 고객중심경영 등 필수적인 경영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개선활동을 벌이는 노력의 소산이다. 최고경영진 뿐만 아니라 현장 근로자들 스스로 세계 리딩컴퍼니로서의 자부심에 걸맞는 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 경쟁자들의 허를 찌르는 전략적 모험도 이들 기업이 업계 선도자가 된 비결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80년대 삼성이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미국과 일본 업체들은 '미친 짓'이라며 웃었다. 혹 지을 경우에 대비해 훼방도 놓았다. 그러나 상식을 깨는 도전적인 모험으로 삼성전자는 세계 최강자가 됐다. 물론 국내 우량 기업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GE나 IBM 등 초일류 기업들은 자재구매와 판매는 물론 인사 등 관리업무도 웹을 기반으로 처리하고 있다. 또 핵심사업 이외에는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투자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IT(정보기술) 환경에 더욱 신속하게 대응하고 자산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국적 기업 마인드'도 빼놓을 수 없다. 내수시장은 작고 주력 수출지역인 미국의 경기는 나쁘고 유럽은 '유로' 출범으로 역외지역 업체들에 대해 문을 닫아걸고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시장에 더 가까이' 가는 방법 뿐이다. 각 나라에 대해 그 나라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정도로 현지화됐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리딩 컴퍼니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