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회계기준과 관행등을 내세우며 '자본주의의 스탠더드'를 자처해온 '주식회사 미국'이 각 분야에 만연된 모럴해저드로 극심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기업은 투자자를 기만하고,이를 감시해야 할 회계법인과 증권사 등은 오히려 기업편에 서 이익 나눠먹기에 급급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1면을 포함해 3개면을 할애,각종 스캔들로 난국에 처한 '주식회사 미국의 위기(Corporate America's Crisis)'를 집중 해부했다. ◆위기의 본질은 신뢰성 상실=지난해 9·11테러 이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뒤 각종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말 파산보호를 신청한 세계최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에서 그동안 감춰져 있던 '주식회사 미국'의 부조리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곳에선 회계조작,외부감사 소홀,임직원들의 거액 보상금 수령,감독기관의 감독부재,은행의 무리한 대출,정경유착 의혹 등 스캔들의 단골 요소들이 모두 등장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회계법인등 '자본주의 경제경찰'들은 오히려 기업의 부정행위를 도와주고 이득을 챙겼고,SEC등 정부 기구도 이를 방관해왔다. 행정부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엔론의 관계가 도마위에 오른데 이어 딕 체니 부통령도 기업관련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의회도 정작 회계관행 등에 대대적인 혁신을 가하자는 '개혁법안'이 정치자금마련에 타격을 줄까봐 이 법안의 통과에는 부정적이다. 한마디로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바퀴에 모럴해저드란 이물질이 가득 끼어 '주식회사 미국'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마련에 나선 미국정부=뉴욕주 검찰은 8일 버뮤다 등 '조세피난처'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탈세혐의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SEC도 기업의 재무제표에 최고경영자(CEO)가 서명토록하는 등 경영진의 회계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FT는 "미국 경제가 실업률 경제성장률 등 지표상으론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개별기업의 주가와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신뢰성 상실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미 정부의 대책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