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은 자칫 약자를 더욱 약자로 만들고,소위 혁신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것은 강자를 더욱 강자로 만드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최근 일단의 유럽학자들이 이른바 '지역혁신 패러독스(Regional Innovation Paradox)'를 제기하고 나섰다. 뒤떨어지는 지역일수록 새로운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크지만 혁신촉진을 위한 중앙정부 지원자금의 흡수력에서나,또 스스로 투자할 능력 측면에서 크게 부족한 현실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지역혁신 패러독스'가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걸까. 산업자원부가 정보 생명 나노 등 소위 6대 신기술 산업을 수도권 공장설립 규제대상에서 제외하고,산업구조가 낙후된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개발보조금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산업집적활성화법(공업배치법의 개정)을 들고 나왔다. 건교부의 반발 등이 예상돼 추후 협의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규제를 완화한다는 차원에서,또 신기술 산업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춘 수도권을 무조건 배제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인지의 측면에서 보면 산자부의 추진전략은 정공법이라 할 만하다. 이것은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제거점으로 발전시키고,지방은 지방대로 혁신능력을 확충해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KDI(한국개발연구원)의 '2011 장기비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론상으로 서로 윈-윈(win-win)하자는 일들이 자칫 잘못하면 종종 제로섬 게임적인 약탈양상으로 나타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지역혁신 패러독스가 무시못할 수준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불행히도 우리는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구조조정이나 구조전환 등의 산업정책이 지역관점에서 보면 시간만 벌게 해줬을 뿐,신기술이나 혁신의 격차를 줄이는 기회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최근 변화의 조짐이 있긴 하지만 중앙정부의 기술정책이나 혁신정책이란 이름의 각종 중립적인 지원책은 수도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자부가 내놓은 방안 중 파괴력이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역시 '6T산업,수도권 신·증설 허용'이다. 6T 신기술 산업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안달인 지방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게 틀림없다. 굳이 6T에 연결시키려고 한다면 그리 못할 업종이나 분야도 사실 별로 없고 보면 지방의 위기감은 더 클지 모른다. 이에 비해서 낙후지역 개발보조금이라든지 지방이전 기업에 대한 금융ㆍ세제지원 방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를 상쇄시키기에는 너무 약하지 않나 싶다. 국가경제적으로 지역혁신이 정말 중요하다면 수도권 규제완화에 충분히 상응할 만한,그래서 지방이 자신감을 가질 만한 그런 파괴력 있는 조치도 함께 강구돼야 하지 않을까.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