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TI에 근무하는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기는." 2년 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직원들에게 돌린 설문서 항목은 이렇게 시작됐다. 회사 경쟁력을 재점검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그럼 가장 많은 응답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인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직원들로부터 이같은 '다행스러운' 응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인력자원(HR) 정책을 크게 바꾼 덕분이다. 기업 경쟁력은 곧 유능한 인력에 있다고 판단, 우수인재를 확보하고 묶어두려는 전략을 실천한 결과다. 그 전략의 밑바탕엔 '유능한 직원들은 유능한 직원들끼리 어울린다(Smart people play with smart people)'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인력정책 원칙이 깔려있다. 캐서린 콜린스 HR담당 이사는 "첨단기술의 수명이 짧듯이 첨단업종에서는 이직률이 높다. 과거의 경우 대다수 대졸 입사자들은 겨우 2∼3년 정도를 근무하다가 퇴사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같은 현상을 방지하고 유능한 인재를 붙잡아 두기 위해선 그럴만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회사 내에 팽배했었다"고 말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유능한 인재를 구하고,유능한 인재가 이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취한 가장 우선적인 조치는 리더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일이었다.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유능한 리더(smart leader)가 없는 탓이라는 답을 찾아낸 것이다. 콜린스 이사는 "과거에는 톱다운(Top-down) 시각에서만 인력을 관리해 왔다. 주로 매니저 등 상사들에게 아래 직원들의 역량을 물어봤으나 이젠 직원들과 입사 희망자들의 시각을 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더들이 어떻게 직원들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고 보고 있다. 똑똑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책임과 의무는 리더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게 그가 덧붙인 설명이다. 회사측은 그래서 HR부서가 가지고 있던 인력채용과 교육권한을 매니저 등 실무 리더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양했다. '톱텐 아웃플로(Top 10-Outflow) 정책'이라는 정글의 법칙도 도입했다. 직원들중 상위 10%와 하위 10%를 철저히 구분하는 정책이다. 예컨대 '톱 텐'은 '바텀 텐'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리더십 교육을 키워 주고 있다. 바텀 텐은 지원규모와 인센티브도 적다. 교육성과가 낮으면 냉엄하게 해고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리더에게 부여된 또 하나의 의무는 부하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한국계인 한 직원은 "직원들이 직장을 떠나게 되는 것은 상사와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TI에서는 갈등이 생기면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반직원과 보스와의 사이에 문제가 발생 경우 아래직원이 좌절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가 취하는 문제해결 방식은 아래 사람에게 언로(言路)를 열어주는 소위 오픈도어 정책으로 불리는 방법이다. 불만이 있는 직원은 우선 HR 부서에 그 사실을 알린다. 그후 해당직원은 담당임원에게도 직접 그 내용을 알리도록 한다. 그는 "어느 한국계 직원이 보스와 자신 간의 심각한 갈등문제를 부사장에게 보고했다. 보스와 그 부사장은 절친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부사장은 한국계 직원의 얘기를 끝까지 경청한 다음 보스와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줬다. 지금 그 직원은 직장을 떠나지 않고 잘 근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인력정책은 직원들의 업무와 삶의 질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려면 직원 개개인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배어 있다. 왼쪽 코를 뚫어 피어싱을 한 라라 왈렌타인 홍보담당 여직원은 "회사가 사적인 취미생활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이를 보장해 주는데 만족한다"며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환경보호 연구활동을 회사가 권장하고 지원해 준다"고 말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이같은 인사정책은 '일하기 좋은 훌륭한 일터(Great workplace)에는 유능한 리더(Great leaders)가 북적거리고 직원들에 대한 배려와 보상도 크다(Great rewards)'는 경영철학에서도 선명히 읽을 수 있다. 댈러스(텍사스주)=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