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댈러스 디플로매트가에 위치한 TD인더스트리즈 본사. 건물 외벽에 표시된 문구가 유난히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로 팔짱을 낀 직원들을 상징화한 회사로고 바로 아래 '종업원들이 소유한 회사(An Employee Owned Company)'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잭 로웨 주니어 TD인더스트리즈 회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의외였다. 다른 기업 같으면 홍보담당자가 방문객을 접대할 텐데 회장이 직접 프리젠테이션(회사소개 및 설명)에 나서다니. "훌륭한 사람들이 와서 일하게 만드는게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로웨 회장의 첫마디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외벽 문구대로 TD인더스트리즈가 1백% 종업원 지주회사라는 점은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이 회사 종업원들은 '파트너'라고 불린다. 수직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 회사와 함께 커가는 수평적인 파트너로 존중되고 있다. 전체 종업원(지난해 1천3백68명) 중 14%가 10년 이상 근무경력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존 게하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1953∼1961년)에 입사해 장기 근무하고 있다. 제시 매케인 인력담당 매니저는 "모두 파트너이기 때문에 회사가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고락을 같이하는 단단한 결속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TD인더스트리즈를 특징짓게 하는 경영철학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자리잡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번트 리더십을 통한 종업원 존중이다. 로웨 회장은 서번트 리더십의 요체를 "종업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업원들을 단순한 고용자가 아닌 인격체(Total Person)로 존중해 주고 리더로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종업원들을 닦달해 이익 창출하는데 혈안이 돼 있지만 우리 회사는 구성원들이 성장하도록 돕는데 더 많은 힘을 기울인다. 그런 과정에서 회사 이익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회사는 종업원들이 경영진을 신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기본은 경영진이 종업원을 믿는 것이다. TD인더스트리즈가 서번트 리더십을 도입한 것은 지난 1972년. 현 회장의 아버지이자 회사 설립자인 잭 로웨 시니어 회장이 71년 로버트 그린리프가 쓴 '리더로서의 부하(Servant as leader)'라는 책을 읽고 이를 받아들였다. TD인더스트리즈는 서번트 리더십의 철학에 따라 종업원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리더가 되려면 먼저 부하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리더는 종업원들의 꿈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TD에서 리더는 절대로 '밀어붙여(Get going)'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함께 밀고 나가자(Let's go)'라고 해야 한다. 종업원들을 아랫사람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기 때문이다. 서번트 리더십을 통해 경영진과 종업원들, 또 종업원과 종업원들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 중심'의 조직문화를 구축한 것이다. 이같은 신뢰관계는 특히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껏 빛을 발했다. 지난 89년 미국 경기침체의 여파로 건설업계에도 불황이 몰아닥쳤다. 회사 설립 후 40여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리기가 쉽지 않아 급기야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생존을 위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동안 적립해 온 임직원들의 연금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로웨 회장은 당시 5년 이상 근무 중인 구성원들을 모두 소집했다. 회사의 위기상황을 조금도 숨김없이 정직하게 설명했다. 이미 투명경영을 통해 잘 알려진 경영상황이었으나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다시 한번 이해시켰다. 임직원들은 연금을 포기할지 여부를 놓고 밤새 격론을 벌였다. 결국 연금혜택을 포기한다는데 동의했다. 파트너로 근무해 왔던 회사를 사랑했고 최고경영자를 신뢰했기 때문이라는게 임직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덕분에 회사는 90년 다시 흑자로 돌아섰고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어쩔수없는 인력 감축이 없지 않았으나 임직원들은 큰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이같은 위기 극복에 대해 로웨 회장은 "서번트 리더십이 형성한 신뢰가 더 없이 소중한 자산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회사가 종업원 개개인의 가능성을 믿어 주고 성장시켜 줄 때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TD인더스트리즈는 서번트 리더십 교육을 위해 미국 전역에서 최고의 컨설턴트를 찾아 컨설팅을 받는다. 수백명의 종업원들이 리더십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해마다 종업원들이 콘텐츠를 보완하기도 한다. 중간 간부급 리더들은 종업원들을 얼마만큼 성장시켰느냐로 평가받고 있다. 종업원 성장여부를 판단하는데는 고객만족도 매출신장률 안전(무재해) 기획력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종업원들?쪼아대 매출을 늘렸거나 종업원을 리더로 성장시켰지만 매출실적이 나쁠 경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사업적 성과에만 치중, 지나치게 종업원들을 혹사시킨 매니저는 재교육 대상이 된다. 재교육 후에도 이런 행동이 개선되지 않으면 좌천되거나 최악의 경우 해고대상 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다양한 인종의 종업원들을 세심히 배려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중 하나는 '다이버스티 저니(Diversity Journey)'라는 독특한 시스템. 2개 국어 구사자가 채용인터뷰를 맡는다든지 사내 뉴스레터를 영어와 스페인어로 제작하는 것 등이다. 로웨 회장은 "오는 2005년까지 종업원들의 3분의 1을 유색인종으로 채우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다양한 인종을 채용할수록 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영진과 종업원들의 사내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월별 분기별로 모여 매출현황 등의 정보를 공유한다. 급여를 나눠 줄 때는 회사경영 내용이 담긴 미니 뉴스레터가 첨부된다. 로웨 회장은 해마다 10∼15명의 종업원을 무작위로 선발해 약 20회의 조찬대화 시간(ERT:Employee Round Table)을 갖는다. 회사의 비전과 운영방침 등을 설명하는 한편 종업원들의 건의사항은 즉시 조치해 주고 있다. TD인더스트리즈와 잭 로웨 회장은 서번트 리더십과 신뢰경영으로 GE와 잭 웰치 전 GE 회장 못지않은 기업 및 기업인으로 우뚝 솟아있다. 댈러스(텍사스주)=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