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10월 미국의 거센 통상압력에 밀려 체결한 '한.미 자동차 협정 양해각서(MOU)'에 조세주권을 침범하는 치명적인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경기진작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승용차 특소세율 인하(30%)조치를 중단하는 것조차 미국과 사전에 협의해야 할 정도로 정책 운신의 폭에 치명적인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오는 2005년까지 승용차에 대한 특소세를 지속적으로 내리겠다고 약속,앞으로도 자동차 특소세를 계속 인하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조세주권 침해 =한.미 자동차 양해각서 1조(목적과 일반원칙) B항에는 '한국 정부는 외국자동차의 시장 접근에 적대적으로(adversely) 영향을 줄 수 있는 직.간접적인 어떠한 조치도 선택하지 않는데 동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어떤 조치가 '적대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승용차 특소세 기본세율 인하뿐만 아니라 탄력세율을 한시적으로 적용하면서까지 승용차 특소세율을 더 낮춘 것은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내수경기가 되살아나고 주식 및 부동산시장에서 일부 과열기미까지 보이자 정부는 경기회복 속도조절에 나섰다. 권오규 재경부 차관보는 "국내 경기 상황만으로 보면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자동차 특소세율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며 "그러나 미국이 협상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어온 만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과 정부의 판단만으로 세제정책을 결정할 수 없게 돼있다는 얘기다. 재경부의 다른 관계자는 "미국의 압력으로 세율을 바꾸지 못한다면 분명한 주권침해"라고 말했다. ◆ 불평등한 계약조건 =한.미 자동차 MOU는 '한국 시장내 자동차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미국시장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시장만이 외국산 자동차에 폐쇄적이라는 전제조건 아래 모든 조항이 만들어졌다. 남진웅 재경부 경협총괄과장은 "MOU를 이해하려면 지난 98년 당시의 한.미간 통상마찰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연간 60만∼7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한국이 미국산 자동차를 연간 1천대도 구매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의 막무가내식 압력으로 어느 정도 불평등 계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 추가 세율인하도 불가피 =한국 정부는 지난 98년 특소세율을 30% 인하한데 이어 오는 2005년까지 승용차 특소세를 지속적으로 내리기로 미국측과 합의했다. 이번에 세율을 조정하고 배기량에 따른 차등세율체계를 재조정하더라도 내년 또는 내후년에 또다시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율 8%를 미국 수준(2.5%)으로 내려달라는 압력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정에 따라 다자간협상으로 자동차 무역마찰을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