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가입후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지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얼마전 발표된 금년 1.4분기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7.6%에 달해 정부의 목표성장률 7%를 가볍게 넘어섰다. 이에 따라 연초부터 제기됐던 경기후퇴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특히 공산품 생산, 수출이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만 경기호조의 한편에 과잉생산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수요측면에서는 실업자 증가 등 심각한 마이너스 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고도성장과 디플레이션이라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同居'는 오늘의 중국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중국 최대의 수출박람회인 광저우(廣州)교역박람회가 4월30일 끝났다. 가전제품에서부터 제조기기, 일용잡화, 의류에 이르기까지 이번 교역박람회에서 이뤄진 계약액은 168억달러로 미국 테러사건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던 지난해 가을 박람회때에 비해 26.7%나 증가했다. 이 금액은 올해 전체 수출예상액의 6%에 해당한다. 대미계약이 60% 늘어난 것을 비롯, 중동, 러시아쪽 바이어도 눈에 띄게 늘었다. 1.4분기 수출액 신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9.9%였다. 연초부터 수출이 본격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미국시장의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빨랐던데다 넓은분야에 걸친 수출선 다변화가 힘을 발휘했다. 관영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은 4월에 발표한 춘계보고에서 수출신장률을 작년 가을 전망치 6.7%에서 8.6%로 상향조정했다. 외부수요에 힘입어 연간 경제성장률은 7.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국내에서는 수출과 국내시장 양쪽을 겨냥한 증산움직임이 외국계 메이커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의 LG전자는 톈진(天津)에 연산 1천만대 규모의 전자레인지 공장을 건설, 전자레인지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하는 광둥(廣東)성의 현지기업 格蘭仕(갤런츠)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의 올해 중국 국내수요는 600만대 정도로 예상되고 있어 중국에서의 경쟁격화가 중국제품을 세계각지로 밀어내는 강한 압력이 되고 있다. 한편 PC는 대만당국이 노트형PC의 본토투자를 금지조치를 해제한 것을 계기로 상하이(上海) 주변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 대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급을 담당할 대만 메이커들이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데스크톱을 합해 매년 50%가 넘는 페이스로 증산이 계속되고 있다. 베이징(北京)에서는 수입품을 중심으로 비싸기만 하던 노트북PC 가격이 내려 1만위앤 이하 모델도 늘고 있다. 급속한 소득향상에 힘입어 일반시민의 자동차 소유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올해 승용차 메이커들은 작년보다 33% 늘어난 94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탐욕'으로 보일 정도의 이런 증산경쟁으로 중국 국내 가격의 하락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공장'의 현재의 뒷모습이다. 가전부문에서는 TV에 이어 에어컨의 과잉생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국내의 보도에 따르면 2001년 시점에서 재고가 국내의 1년치 수요에 해당하는 900만대에 달한데 이어 올해는 1천200만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4월에 현지 메이커 2개사가 잇따라 가격을 20% 인하,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2천위앤 이하로 값을 내려 가격인하전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WTO가입에 따른 5천300개 항목의 관세인하가 가격하락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또 경쟁력 없는 국영기업의 정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실업자가 발생, 디플레이션 기미를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에 따르면 王東進 노동사회보장부 차관은 4월28일 한 세미나에서 "앞으로 4년간이 고용면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면서 "실업자가 2천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공식통계에 잡힌 실업자의 거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올들어 동북지방 등에서는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쟁의가 발생, 사회불안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게다가 과잉 노동인구를 끌어안고 있는 농촌의 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것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국채발행을 늘리는 등 98년 이래 계속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재정을 꾸려오고 있지만 사회과학원은 춘계보고에서 "국채의 대량발행과 세수증대는 정부의 기능강화일뿐 시장경제 강화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공공투자가 반드시 민간투자를 효과적으로 유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감세를 통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중앙은행인 중국은행은 금년 2월 2년8개월만에 금리인하를 단행했지만 디플레이션 진행에 따른 실질금리 상승에 제동을 걸기위해 다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기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