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 오후 2시 서울 영동의 하이닉스반도체 사옥. 오전 8시에 시작된 이사회 결과를 6시간째 기다리던 하이닉스 노조원과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갑자기 '와'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이사회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하이닉스 이사회는... 마이크론에 대한 매각은 모든 이해 당사자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내리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화요일의 대반란'이 국내외를 뒤흔든 순간이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사회 전날인 4월29일 저녁까지만 해도 마이크론측과 합의한 조건부 매각 양해각서(MOU)가 통과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이사회 멤버는 사내이사 3명(박종섭 대표이사 사장, 박상호 사장, 전인백 부사장)과 사외이사 7명(이용성 전 은행감독원장, 우의제 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강철희 고려대 교수, 전용욱 중앙대 교수, 우창록 율촌법무법인 대표, 손영권 오크테크놀로지 사장, 제임스 것지 인텔 이사) 등 10명. 이중 정부와 채권단이 '우호적'으로 분류한 사람은 금융계 출신인 이용성 전 은감원장, 우의제 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 등 2명이었고 나머지 사외이사 5명은 '중립'으로 분류됐다. 사내이사 3명이 미덥지 못했지만 이사회 멤버들에게 "국익을 생각하라"며 '협박반·회유반'으로 각개격파식 설득을 갈무리까지 해 둔 상태라 낙관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낙관이 얼마나 근거없는 주먹구구에 바탕한 것이었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하이닉스측을 대표해 MOU에 서명한 당사자중 한 명인 박종섭 사장의 심중을 간과한 것부터가 그랬다. 박 사장은 MOU를 맺으면서 하이닉스 이사회의 동의를 '필수 조건'으로 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채권단 회의(4월 29일)가 열리기 며칠전 한 사석에서 "이사회에서 의사표시를 할 것"이라고 비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이반(離反) 조짐은 몇 군데서 감지됐다. 하이닉스측이 이사회 4일전인 4월26일 '독자생존방안 보고서'를 채권단에 전달함으로써 '밀어붙이기식 매각'에 거부의 뜻을 강하게 시사했다. 박 사장과 하이닉스 이사회로 하여금 '반란'을 굳히게 한 건 4월27일 발표된 잔존법인 채무조정안. 채권단이 13.5 대 1로 기존 주식을 감자(자본금 감축)하고 빚을 3조7천억원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이 이들을 '외통수'로 몰았다. 매출액 1조원인 회사(잔존법인)가 3조7천억원의 빚을 떠안고 생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잔존법인에 대한 채무조정안이 발표된 뒤 마이크론이 채권단과 하이닉스에 전달한 의견은 이사회의 '결심'을 더욱 굳혀줬다. 마이크론은 'jeopardy(위험)' 'ridiculous(우스운)'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잔존법인의 생존 가능성에 회의를 표시했다. 하이닉스는 즉각 박 사장 명의로 12개 채권기관 운영위원회에 'MOU를 승인할 때 잔존법인의 채무조정안에 대한 문제점을 신중하게 검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마지막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4월29일 열린 채권단회의에서 이 요청은 철저히 묵살됐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채권단은 크고 작은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와 채권단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하이닉스 이사회의 결정은 분명 '반란'이었다. 그 '반란'은 다분히 정부의 흔들리는 협상전략이 초래한 것이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