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면서 기업 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반면 제품 생산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자칫 올 하반기 이후 일부 품목에서 '공급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아직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기 사이클의 최고점을 확인하고 투자에 나설 경우 오히려 기업들이 과잉설비에 발목을 잡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최근의 경기회복이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일부 품목 위주로 진행되면서 이같은 위험 발생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업종별로 재고 불균형 =지난 1.4분기 중 재고는 전체적으로 11.4% 감소했다.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는 자동차(-22.5%)와 반도체(-37.4%) 휴대폰이 포함된 음향통신기기(-22%)의 재고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결과다. 그러나 석유정제품 재고는 1.4분기 중 20%나 늘어난 것을 비롯 의복(13.3%) 음식료(4.3%) 조립금속(5.1%) 기타전기기계(2.2%) 등은 재고가 늘었다. 자동차는 내수경기를 부추기기 위한 특소세 한시 인하(6월 말까지) 여파로 주문량이 밀려 있다. ◆ 부족한 설비투자 =재고가 급감하고 있지만 설비투자는 별로 늘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4분기 중 2% 늘어나는데 그쳤다. 작년 1.4분기에 설비투자가 5.4%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산업은행 조사 결과를 봐도 대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를 작년 실적보다 2% 줄여 집행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 공급능력 부족과 과잉설비 가능성 공존 =일부 업종에서는 설비투자가 조만간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급능력 부족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주거용 건물을 짓는데 쓰이는 제품이나 자동차 등 내구재는 이미 생산시설이 모자랄 지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련업체들은 최근의 판매 호조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을 우려해 설비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과잉설비로 몸살을 앓았던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무모하게 늘릴 가능성은 예전에 비해 훨씬 적어졌다. 그러나 적절한 투자 시점을 놓칠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