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비밀 보호가 우선인가, 직원 사생활 보호가 우선인가.'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기업들의 직원 e메일 모니터링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 쟁점이다. 직원 e메일을 불법검열한 혐의로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 간부가 전격 구속된 사건은 은밀히 진행돼 왔던 기업 메일검열의 불법 여부를 표면으로 부상시켰다. 그동안 개인적 이유로 타인 메일을 엿봤다가 구속된 사례는 있으나 회사업무와 관련, 메일검열 관련자가 형사처벌된 것은 국내 처음이기 때문이다. 기업비밀 보호와 직원 사생활 보호는 상충될수 밖에 없어 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e메일 통한 기밀유출 사례 =2000년 한햇동안 수사당국에 적발된 산업스파이 사건은 60여건에 이른다. 상당수 기업들이 회사 이미지 추락을 우려, 덮어두는 경우가 적지않아 실제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보화가 급진전하면서 최근에는 e메일이 기밀유출 주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지난 98년 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기술 유출사건도 e메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출사건으로 삼성전자가 입은 손실액은 6조원으로 추정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 LG정보통신도 한 직원이 회사 e메일을 통해 교환기(ATM) 관련 기술인 '주제어장치' 파일 등을 유출하려다 법원의 실형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이 기술이 불법으로 중국에 팔렸다면 LG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5조원대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게 업계 분석이다. ◆ 주요 쟁점 =그동안 상당수 국내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e메일을 알게 모르게 모니터링해 왔다. 국내에서 선보인 메일 모니터링 솔루션도 소만사의 메일아이, 엑시큐어넷의 이매스,플러스기술의 시큐어메일, 이캐빈의 e차이니스 등 10여종에 이른다. 이들 제품은 기업 내부의 중요한 정보가 외부로 무단 유출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네트워크 관리자가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일부 기업들은 법적 문제를 고려해 고용계약서에 'e메일등 개인의 통신수단을 검열할 수 있다'는 동의서를 받고 있다. A기업 한 임원은 "기밀이 유출될 경우 수년간의 노력과 엄청난 비용이 수포로 돌아가는 등 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대해 시민단체들은 e메일 검열은 최소한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에 검열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해줄 경우 근로자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훤일 경희대 교수(법학)는 "메일 검열은 기업의 이익에 명백하게 반하는 경우로 엄격하게 한정돼야 한다"며 "근로자에게 징계나 해고 등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도보완 시급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활용할 때는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통신사업자에 한한 것이고 일반기업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사규 등에 사내 통신감시를 규정하고 있는 실정이다(박훤일 교수). 따라서 정보유출 등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직원이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의 자유(헌법 17조), 통신의 자유(헌법 17조)를 내세워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수도 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