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3년 고려 공민왕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 선생은 목화 종자를 붓대에 숨겨 국경을 넘는다. 원나라는 목화 씨를 함부로 다른 나라로 내보내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짓고 있었다. 문익점 선생은 그러나 목화에서 실을 뽑아 무명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목화씨를 몰래 가져가는데 성공한다. 그로부터 6백23년 뒤인 1986년 8월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 상하이에서 홍콩행 비행기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타는 사람이 있다. 농우바이오의 고희선 회장이다. 그는 중국을 다니며 수집한 참외 고추 등의 '씨'를 한국으로 가져왔다. '씨'를 구두 주머니 가방 등에 숨긴 그는 조마조마했다. 종자는 국가의 주요 자원으로 분류돼 밀반출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에 걸리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고 회장은 운좋게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중국 보안당국의 짐검사에 걸려 한달간 고생해 모은 씨를 몽땅 빼앗긴다. 그렇다고 고 회장의 종자 모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96년까지 매년 중국의 씨를 모았다. 한번 가면 20∼25일 정도 머무르며 중국의 시골을 헤집고 다녔다. 이렇게 모은 씨앗은 농우바이오의 소중한 재산이 돼 25만여종으로 늘어났다. 고 회장은 종자 못지않게 농지도 어느 정도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을 일궈서라도 전답을 일정수준으로 확보해야 식량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고 회장의 호는 경산(耕山)이다. 산을 갈아 밭을 만든다는 뜻이다. "종자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 될 것이다.우리 먹거리의 원천인 물려받은 종자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문익점 선생 덕분으로 겨울에 추위에 떨던 백성들이 무명옷으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처럼 고 회장의 노력도 조만간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