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것이다." 지난 2년5개월간 제너럴모터스(GM)가 기회있을 때마다 되풀이해온 말이다. 한때 협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압박용으로 해석되기도 했던 이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로 입증됐다. GM은 1999년 말 한국 정부와 대우차 인수협상을 수의계약 형태로 추진할 때 대우차의 가치를 55억달러 정도로 보았다. 몇가지 전제를 붙인 것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우차가 국제입찰로 전환돼 2000년 6월 GM측이 제출한 인수제안서에서는 가치가 15억달러 가량 하락했다. 포드에 밀려 입찰에 탈락하고도 GM은 자신들이 써낸 가격이 적정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포드가 돌연 대우차 인수를 포기하자 대우차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가격은 더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대우차가 팔리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한국 기업 전반의 구조조정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2001년 5월29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 김석환 대우차 사장, 한대우 산업은행 대우팀장 등이 상기된 표정으로 호텔 비즈니스룸에 들어섰다. GM의 최종 인수제안서 설명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실사가 끝난 뒤 무려 4개월이나 뜸을 들인 GM이 대우차가 4월에 영업이익을 내고 구조조정도 어느 정도 마무리하자 인수제안서를 제출키로 한 것이다. 테이블에 앉은 GM 실무자들이 구체적인 인수내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을 때 대우차 매각 실무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수조건은 국제입찰 때 GM측이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나빴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이때 GM측이 내민 대우차 자산 인수대금은 10억달러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우차의 총 자산은 2백억달러 이상이었다. 한국측 협상단은 아무런 말없이 호텔을 빠져나왔다. "이따위 인수 제안이 어디 있느냐. 협상을 깨자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대우차 매각은 GM 외엔 대안이 없었다. 일각에서 제기된 '공기업화'는 대우차 처리의 불투명성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했다. 지리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진 끝에 양측은 일단 양해각서를 맺기로 했다. 물론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였다. 9월21일 체결된 양해각서의 내용은 이렇다. 'GM과 채권단은 각각 4억달러와 2억달러를 출자해 신설법인을 설립한다. 신설법인은 대우차 자산(부채 제외) 인수대금으로 12억달러의 우선주를 발행해 채권단에 지급한다. 대우차 부채도 8조원어치 인수한다. 부평공장은 일단 매각대상에서 제외하되 생산위탁 계약을 맺어 6년 후 인수를 검토한다' 채권단은 GM측과 20억달러에 합의했다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러나 실제 GM측이 내는 돈은 4억달러에 불과했다. '20억달러'라는 문구에는 헐값 매각 시비를 두려워한 채권단의 고심이 배어있었다. 부평공장도 인수대상에서 제외했다. 부평공장이 빠진 대우차 매각은 '절름발이 매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채권단은 그해 5월 GM측이 제시한 가격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이끌어냈지만 부평공장 매각에 실패함으로써 또 다른 부담을 안게 됐다. 동시에 본계약 협상 때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GM측이 또 다시 가혹한 조건을 내밀 것이라는 '예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 예감은 2001년 12월부터 2002년 2월까지 GM측이 태풍처럼 휘몰아친 '판 흔들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