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인도네시아 외환위기 이후 시중 은행으로부터 대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서민들이 계(契)를 조직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아리산'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판(板) 계는 통상 20-30명 단위로 결성돼 일정 기일에 곗돈을 내고 예정된 순서나 추첨으로 특정 계원에게 목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곗돈을 먼저 타가는 대신에 선이자 명목으로 일정 액수를 공제해 그 돈을 다음번 당첨자 선정 때 이월하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선순위 당첨자가 다른 사람보다 빨리 목돈을 굴리는 혜택을 얻는 대신에 후순위일수록 납입 곗돈이 적어지기 때문에 대출과 저축 효과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어이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례로 동부 자바 주도 수라바야에 거주하는 주부 수시 프라티크노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웃 주민 19명과 함께 아리산을 결성, 사업 밑천을 손쉽게 마련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녀는 다른 계원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액수의 선이자를 제시해 5천만루피아의 곗돈을 받아 미장원 개업 자금으로 활용했다. 미용사 3명과 종업원 4명을 고용한그녀는 매월 곗돈을 내고도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는데 충분할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있는 것이다. 계원들은 아리산을 운영하면서 형성된 상호 간 신뢰를 바탕으로 급전이 필요할경우 서로 기꺼이 돈을 빌리고 빌려주기도 한다. 서부 자바 반둥에서 소규모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부디만 수탄토씨는 "원자재나신형 기계 구입을 위해 급전이 필요할 경우 대출 조건이 까다로운 은행 대신에 계원들에게 돈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면 대부분 선뜻 수용한다"고 밝혔다. 지난 97년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외환 위기 이후 시중은행의 대출 요건이 대폭강화되면서 아리산이 급격히 확산, 서민들의 금융 수요를 충족시키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으나 부작용도 만만찮다. 계주가 수 십개의 아리산을 운영하다가 곗돈을 탄 뒤 잠적하는 사례가 수시로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과거 70, 80년대에 사회문제가 됐던 계 사기사건과 유사한 범죄가 인도네시아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아리산은 이같은 위험에도 불구, 시중 은행들이 대출 신청자에게 고가의 담보물과 보증인을 요구하고 고율의 이자를 부과하는 기존의 금융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한 앞으로도 계속 번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hadi@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