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어 지난해의 불황에서 힘찬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깊은 주름이 패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걸프전 승리로 인기가 한껏 치솟았으나 경기 둔화 때문에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쓰라린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요즈음 경제를 부쩍 챙기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현재 부시 대통령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휘발유 값. 많은 미국인이 경제 상태와 직결시키고 있는 휘발유 값이 지난달에만 갤런당 25센트나 올라 1990년이래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였고 올 여름까지는 계속 오를 전망이다. 이라크가 8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철군을 요구하며 한 달 동안의 석유금수를 선언함으로써 뛰는 유가를 더욱 부채질한 것도 커다란 불안 요인이다. 부시 대통령은 휘발유 값 급등으로 자칫하면 신속한 경기 회복이라는 업적이 졸지에 물거품이 되고 2004년 재선 가도에 악재로 작용할까 봐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기가 닥치는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예상한 `전쟁 할증료'가 붙어 이미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어 중동 정정 불안까지 가세한 것이 최근 유가 급등의 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 손성원 웰스 파고은행 부행장은 "유가 인상은 소비자 구매력을 고갈시킨다는 점에서 세금 인상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최근의 유가 상승이 강한 탄력을 받고 있는 미국 경제의 회복세까지 잠식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계에서 5대 예측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손 부행장은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올라도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성장률 0.5% 포인트 둔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다만 교통, 건설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유가 상승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하고 "임금은 석유 단일 품목보다는 전체적인 물가 추세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고 마침 경기 회복 첫해라 고용 사정도 여유가 있어 현재로서는 임금이 오르거나 이에 따라 물가와 금리도 덩달아 상승할 우려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장 올 가을의 중간선거를 비롯해서 경기에 너무 많은 게 걸려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한 치도 방심할 수 없는 입장이다. 에너지부는 이에 따라 8일부터 휘발유의 불법적인 매점매석이나 가격 조작 등을 신고하는 직통 전화를 개설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스펜서 에이브러햄 장관이 직접소비자단체 대표들과 만나 불만 사항을 청취하고 문제 해결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과 같은 자율 경제 체제에서 당국이 유통 단속에 나서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지난해 정권 출범 이후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철저히 외면한 소비자단체에 신경을 쓰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소비자 고발 직통 전화는 9.11 연쇄 테러 이후 한 달 동안 운영돼 3천여건을 접수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신고 사항은 공정거래위원회로 넘겨 처리된다. 부시 대통령은 올 1.4분기 성장률이 4%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데도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부터는 경제 지표가 좋으면 노동자들을 방문한 자리에서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여전히 많은 실업자가 있음을 강조하고 지표가 나쁘면 "할 일이 더 있다"며 허리띠를 조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게 백악관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