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모터스(GM)의 앨런 페리튼 아태본부장을 제쳐두고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을 말할 수는 없다. 아시아 비즈니스에서 잔뼈를 키워온 그가 있었기 때문에 대우차 인수라는 큰 그림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그는 GM 내에서 몇 안되는 지한파요 친한파에 속한다.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을 좋아한다. 사실 페리튼이 우리나라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새한자동차에 임원으로 파견됐을 때가 아니라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리튼은 독실한 몰몬 교도로 19살의 나이에 선교사 신분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서울 신림동과 대구 자갈마당 인근 '달동네'에서 3년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봉사와 구호를 겸한 선교활동을 했다. 당시 가난했던 시절을 빤히 기억하는 그는 요즘도 한국내 친구들을 만나면 "한국은 정말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말하곤 한다. 페리튼도 대우차 인수협상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초를 겪었다. 한국 정부나 채권단의 강경파들과 맞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GM내 대우차 인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독일 오펠이나 지난 1999년 말 제휴를 맺은 이탈리아의 피아트, 미국의 각 단위 공장을 이끄는 경영진들은 대우차 인수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대우차가 되살아나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을 늘리면 자신들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지요"(GM 관계자) 이 때문에 페리튼은 지난 4년에 걸친 협상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미국 본사 호출을 당했고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이사들의 질문에 대비해 며칠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었다. 협상 책임자들이 일종의 샌드위치같은 환경에 포위되는 일은 다반사이긴 하지만 페리튼 역시 이중 삼중으로 포위된 가운데 고단한 협상에 나섰던 셈이다. 하지만 GM 입장에서도 페리튼 정도의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페리튼은 대우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나 정책결정 시스템에서 일반 국민정서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시사평론가 뺨칠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실세가 누구인지, 주요 정책들의 결정 라인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는지를 훤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에 마주앉으면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곧잘 한다. 평소 영어로 대화하지만 상대방의 영어 실력이 조금이라도 달리면 그 자리에서 기본적인 사항은 한국어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거짓말을 특히나 혐오한다.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다. 화가 나고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I am unhappy" 정도의 표현만 한다. 이 때문에 우리 협상단은 용어나 표현방식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커피 술 담배 등 몸에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이 첨가된 음식물이나 기호품은 입에도 안댄다. 주스도 생으로만 마신다. 술 한 잔으로 시작하는 '한국식' 협상 관행에는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