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과 관련한 비리에 이어 이번에는 2조7천억원에 달하는 정보화촉진기금이 비리 의혹에 휩싸일 조짐이 나타나면서 정보통신부가 긴장하고 있다. 기금에 대한 조사확대 문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로 인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정통부 해체론'이 힘을 받지나 않을 지에 더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정통부 해체론은 그 자체로 다시금 정권 말기가 도래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언제부터인가 정권 말기에 이르면 거의 예외없이 정부의 조직개편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통합대상으로 거론됐던 부처들에는 '원하는 구도'관철이 최우선 '정책 아젠다'가 된다. 그러니 정통부가 이런 우려를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산업자원부와의 통합,그리고 경쟁정책을 담당하는 통신위원회의 독립을 말하는 정통부 해체론.통신위원회의 독립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통부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체론이 등장한다면 그 반대쪽 힘이 어디엔가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IT영역을 둘러싼 부처간 다툼이 심하다. 비판이 거세지자 한 때는 서로 모여 경계를 정했다고 하더니만 지금의 형편을 보면 아무 소용도 없다. 지칠 때도 됐건만 이토록 싸움이 끈질긴 것을 보면 뭔가 다른 본질적인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 서로 다른 생존논리에서 출발하는 힘의 충돌이 있다. 산자부로서는 기존의 벽을 뛰어넘어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산업의 IT화'는 물론이고 'IT의 산업화'에서도 지분을 늘려 정책영역의 한계를,연구개발과 혁신을 도모할 자금규모를 늘려 정책수단의 한계를 각각 깨려한다. 여기서는 통합론이 곧 생존의 길인 것이다. 반면 정통부는 독자생존의 수성(守城)론이다. 하지만 IT 인프라만으로는 이것이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IT의 산업화'부분을 분명한 고유영역으로 하고,'산업의 IT화'에 대한 지분을 늘리려고 한다. 정통부의 IT기본법 추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렇게 계산법이 서로 다른 데 싸움이 쉽게 끝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지루한 싸움을 방치하기에는 폐해가 너무 크다. 경쟁적인 전시적 행정이 판을 치고,정책의 신뢰성은 갈수록 떨어진다. 정상적인 기업은 피해를 보고,악의적인 기업은 이를 십분 활용한다. 이제는 엄정한 고객만족도 조사를 해서라도 통합론이든 독자생존론이든 분명하게 결론을 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