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정치자금 자유선언 ]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VNO는 최근 정부의 철도건설계획을 백지화하는데 한 몫을 했다. 네덜란드내 8만여개 대기업및 중소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네델란드 정부가 출퇴근 시간의 심각한 교통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로테르담과 독일 루르지방을 잇는 화물철도건설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게 반대의 이유였다. 그것도 자그만치 4년여동안. 그 결과 올연초 네델란드 정부는 VNO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경제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한 '기(氣)싸움'에서 이긴 상징적 사건이었다. 기업 환경오염을 규제하기 위한 정부의 환경법 제정 추진에 제동을 건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네덜란드 정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을 법으로 규제하려 했으나 VNO는 입법화 대신에 정부와 기업들 간의 공익적 약속(private contract)을 역제의했다. 결국 정부와 기업이 쓰레기총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이 단체는 또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출범할 때 관세및 반덤핑 등 기업의 이해와 관련 있는 부분에 대한 대안을 제시, 정부 협상대표로 하여금 이를 반영토록 했다. 이처럼 VNO는 단체 설립 목표인 '기업이익'과 관련되는 일에는 어디에라도 뛰어든다. 정치자금 문제에 관한한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VNO에 소속된 기업은 투명한 정치자금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윈나드 쿼드 플리크 VNO 상임고문은 "정부에서 기업의 이해와 관련된 정책을 제시하면 1천5백여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분과위에서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안을 마련해 정부와 의회에 권고한다"며 "목표는 입법과정에 영향을 미쳐 기업이익을 지켜내는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정치권으로부터 자금에 대한 압력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며 개별기업이 투명하게 자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정치자금 자유 선언과 제 몫 찾기는 비단 네덜란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비즈니스-산업 정치활동위원회(BIPAC)'는 '친기업인을 의회로'란 슬로건을 내걸고 기업에 우호적인 정치인들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한다. 위원회의 그레고리 케이시 대표는 "블루칩 기업 등 주요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금해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후보들에게 제공한다"면서 "공화당 정치인들이 다수지만 일부 민주당 출신도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시 대표는 "노동조합이 친노동 성향의 정치인을 지원하듯 기업도 친기업인을 도와 정책결정 과정에서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도 친기업적 정책을 표방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큰 정당에 정치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선거가 있었던 1998년 다임러 그룹과 도이체방크가 각당에 준 헌금 내용은 정치헌금과 기업이익이 어떤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임러와 도이체방크는 전통적으로 기업입장을 대변해온 기민당(CDU)에 가장 많은 정치헌금을 냈다. 다임러가 23만마르크, 도이체방크가 21만마르크였다. 역시 친기업적 입장을 취해온 기사당(CSU)에도 17만마르크(다임러)와 10만마르크(도이체방크)를 제공했다. 당시 야당인 사민당(SPD.현집권당)에 22만5천마르크(다임러)와 21만마르크(도이체방크)를 헌금한 것은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녹색당 등 소수정당에는 주지 않았다. 정치자금조사위원회는 "정치자금 헌금은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겠다는게 주요동기"라며 "자연 균등한 헌금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 기업인 단체인 '프랑스 기업운동(medef)'의 에른스트-앙트완 셀리예르 회장은 최근 "1천5백만명을 고용하는 70만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싶다"며 "좌우파 어느 쪽을 이롭게 한다는 소리에 개의치 않겠다"며 기업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나섰다. 기업인들은 자유시장경제원칙에 따른 정책대안을 제시하면서 사회당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35시간 노동제와 정리해고 규제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좌파에 불리한 의견이라고 '조심'하는 일은 없다. 여기에는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업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스캔들이 줄을 잇던 프랑스에서 최근 대형 비리사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리비에 라파이 한불친선협회 회장(톰슨사 디렉터)은 "이제 비리 스캔들을 일으키는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기업은 정치자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강조했다. 파리.헤이그=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 ----------------------------------------------------------------- < 특별취재팀 > 김영규 정치부장(팀장) 오춘호 김형배 이재창 홍영식 김병일 김동욱 윤기동 기자(정치부) 고광철(워싱턴) 특파원 강혜구(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