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난 뒤 돈얘기만 나오면 벙어리가 돼야 합니다" 지난 16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현역 의원들이 내뱉은 자조섞인 얘기다. 선거비용 상한액은 기껏해야 평균 1억3천여만원 정도지만 실제 사용한 액수는 대부분 상한액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에 쉬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 결과 출마자의 평균 선거운동 비용은 5억원을 넘었다. 결국 출마자 대부분이 법을 위반했다는 얘기다. 실제 A의원은 10억여원을 사용했지만 선관위 신고액은 1억여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9억여원은 출처와 용처불명의 검은 돈으로 남은 셈이다. 위의 예는 검은 돈을 추방하려는 세계적 노력과는 거리가 먼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가 투명치 않은 우리 선거는 한마디로 정치부패의 축소판이다. 이상만 좇은 법과 현실의 괴리가 빚어낸 결과다. 비단 선거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각당이 선관위에 보고한 국고보조금 사용내역서를 보면 지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수 없는 항목이 수두룩하다. 81년 8억원에 불과했던 국고보조금은 지난해 1천1백39억원으로 1백40배 늘었지만 투명성은 정체상태에 놓여있다. 참여연대 실사 결과 보조금 사용액의 4분의 3이 영수증조차 첨부돼 있지 않았다. 당원 한 사람이 5천만원짜리 점심을 먹었다는 영수증이 나온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첩경인 수입과 지출의 공개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백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기부시 수표 사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앙선관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됐으나 정치권이 선뜻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정치 후원금이 각각 1천프랑(18만원), 1백달러(13만원)를 넘을 때는 수표로 내도록 한 것이나 각국이 일정액(미국 2백달러.26만원, 영국 2백파운드.38만원, 네덜란드 5천유로.65만원) 이상의 기부자 리스트를 공개하는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