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회계법인의 약진' 최근 회계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커다란 변화다. 엔론사태가 터져 나오고 분식회계 혐의로 징계를 받는 등 대형 법인이 흔들리고 있는 사이 중소형 법인들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면서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아더앤더슨과 계약을 해지한 기업들이 '빅5' 대신 중견 회계법인을 찾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엔론 분식회계로 아더앤더슨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다른 대형 회계법인들도 더 이상 안전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빅5'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A사는 최근 주총에서 외부감사인을 대형 회계법인에서 중견 회계법인으로 교체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공신력있는 회계법인이 필요하긴 하다"며 "그러나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놓고 보면 중형 회계법인보다 나을게 없다"고 지적했다. 중소형 회계법인의 강점은 실무 경험이 풍부한 공인회계사가 주요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길 화인경영 이원 선우 등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삼일 안건 등 대형 회계법인에서 경력을 쌓은 중견 회계사들이 독립해 세운 것. 이들 법인은 회계감사는 물론 벤처기업의 기업가치 평가, 컨설팅, 코스닥 등록업무 등 틈새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화인경영회계법인 염규옥 회계사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법인과 달리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밀착서비스를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법인들은 중소 벤처기업 고객에 대해선 경력이 짧은 '주니어급' 회계사들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경험 부족으로 위험요소를 체크하지 못하거나 회계기준을 경직되게 해석, 회사와 마찰을 일으키는 사례도 종종 벌어진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 한 회계사는 "대형 법인이 감사한 결과물을 볼 때 기대 이하라고 느낀 적이 있다"며 "규모가 크다고 리스크 관리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담당 회계사가 자주 바뀌는 점도 대형 회계법인을 선택한 기업의 불만중 하나로 꼽힌다. 신설 회계법인 설립이 이어지는 것도 이같은 업계 변화와 무관치 않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회계법인 수는 35개였으나 현재 54개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등록된 회계법인만 13곳에 달했다. 올들어서도 8곳이 새로 생겨났다. 회계법인 설립이 늘어난 이유는 공인회계사법 개정으로 법인 설립요건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다. 종전까지는 법인 설립을 위해 공인회계사 20명 이상이 필요했지만 10명 이상으로 낮아졌다. 따라서 경험을 축적한 중견 회계사들이 동료와 함께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S회계법인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이후 대형 회계법인들은 제휴사의 '간판'을 등에 업고 영업에서 수혜를 누려온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는 것은 물론 중소형 법인과 경쟁에 나서야 하는 형편이 됐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