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국내 기업 출신 비즈니스맨들은 대부분 입사 직후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외국기업들이 거창한 선진 경영이론을 적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직할 정도로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경영방식을 지키기 때문이다. 형식보다 내용과 효율을, 공급자보다 고객을, 허세보다는 원칙을 중시하는 외국기업들의 경쟁력 사례를 살펴보자. 사장이 자료 챙겨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김희장 과장은 3년전 본사에서 파견한 외국인 사장에게서 '기업문화 충격'을 받아야 했다. 김 과장은 새로 온 사장이 프리젠테이션할 주제에 맞는 갖가지 자료를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요약자료를 깔끔하게 만들어 올렸다. 국내 기업에 있을 때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외국인 사장이 건넨 말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내심 칭찬을 기대했는데 외국인 사장은 "프리젠테이션할 자료와 내용은 직접 챙길 테니 간단한 일정과 관련 메모만 올려달라"고 주문했다. 안전 또 안전 =엘리베이터 업체인 LG오티스의 홍재영 이사는 매년 본사(미국 오티스)와 '이상한' 계약을 맺는다.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계약서다. 뿐만 아니라 그 계약서를 직원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 둬야 한다. 심지어 관리직 직원들이 옥상 등 위험한 장소에 출입할 때도 헬멧을 비롯한 안전장비를 반드시 갖추도록 닥달하고 있다. 직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안전을 챙겨준다. "기계를 조립하고 생산하는 업체에서는 어떤 복지보다 직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게 본사의 기본인식"이라고 홍 이사는 설명했다. 고객 중심으로 =미국계 소프트웨어 업체인 한국어도비시스템스는 분기별로 1백30개 대리점을 평가해 우수업체를 공인대리점으로 승격시키고 있다. 평가기준은 매출이 아니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 수준이다. "매출은 덩치로 결정되지만 고객서비스는 사업에 대한 열정을 반영한다"고 이흥열 어도비 사장은 강조했다. 톰 엔지버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회장은 TI코리아 직원들에게 "나를 포함한 경영진들에게 마음을 쓰지 마라. 내부 일에도 시간을 쏟지 마라.고객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원칙준수와 업무효율 =필립스는 지난해 3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세계전략발표대회를 개최했다. 필립스코리아에선 유재순 이사가 참가했다. 서울에서 싱가포르 에어라인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편안하게 참석했다. 반면 싱가포르 주재 반하튼 필립스아시아퍼시픽 사장은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을 타고 참석했다. '사장은 퍼스트 클래스, 임원은 비즈니스 클래스, 사원은 이코노미 클래스'로 직급에 따라 차등을 두는 국내 기업관행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필립스의 관행은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CEO라도 비행거리가 짧으면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하게 하고, 장거리 출장이라면 평사원에게도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끊어줘 피로하지 않게 업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