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매금융 시장에서 미국계 씨티은행의 성장 속도가 눈부시다. 씨티은행이 국내에서 소매금융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 1986년.그후 5년만이 작년 수신고 6조원을 돌파하며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가운데 소매금융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고 있다. 총수신액만 놓고 볼 때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규모는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어떤 누구도 쉽게 "무시할 만한 실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과 12개 영업점으로 일궈낸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점당 수신액으로 환산해보면 국내 대형은행의 4배에 가까운 5천억원에 가깝다.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은행의 총수신 가운데 씨티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대부분 외국계 은행이 기업금융에 치중하고 있는 탓에 소매금융 분야에선 단연 씨티은행의 약진이 돋보인다.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영업은 철저히 고액 자산가 위주로 운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국 12개 지점 가운데 서울 강남지역에만 절반인 6개가 집중돼 있는 것이 이런 영업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산층 이상이 몰려있는 경기 분당지역에도 지난해 9월 영업점을 열었다. 점포망에서 국내 시중은행에 열세인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이라는 명성도 고액 자산가들을 끌어들이는 데에 한 몫 하고 있다. 씨티은행 직원들도 "씨티"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프리미엄 효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름값만으로 씨티은행이 장사를 잘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진 금융기법을 바탕으로 한 발빠른 시장분석과 진입이 씨티은행의 최대 무기다. 주택담보대출을 앞세워 개인 여신시장을 적극 공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씨티은행은 근저당권설정비 면제라는 파격적인 혜택과 비교적 낮은 대출금리를 집중 홍보하며 단기간에 높은 실적을 거뒀다. 씨티은행의 저력은 뮤추얼펀드 판매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5월 씨티은행이 국내에 첫 소개한 해외뮤추얼펀드인 "씨티가란트-생명공학편"은 한달만에 1천9백60억원을 끌어들였다. 국내에서 팔린 단일 해외뮤추얼펀드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영업을 펼치는 동시에 현지 국가에 토착화된 마케팅을 함께 추진한다는 것이 씨티은행의 기본 영업전략"이라고 소개했다. 2000년부터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없는 빈곤층에게 담보없이 장기간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씨티은행은 지난 연말부터 우량고객을 겨냥한 서비스인 "씨티골드"를 전면 개편하고 또 한번 변신하고 있다. 예치금액 1억원 이상이던 씨티골드 회원기준을 2억원으로 높이는 대신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국내 은행의 VIP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씨티골드의 특징은 국내 금융상품뿐 아니라 고수익이 예상되는 해외 금융상품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씨티그룹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책임지겠다는 전략이다. 전담직원이 고객의 투자성향 및 목적에 따라 최적의 자산구성을 도와주고 정기적으로 자산운용 상태를 점검해 필요할 경우 포트폴리오를 다시 구성해 준다. 계열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의 경제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각종 경제.경영 정보도 회원에게 제공한다. 씨티은행 김용태 상무는 "고객의 자산구성을 분기마다 점검해 수익률을 측정하고 자산운용을 수정하는 등 애프터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씨티골드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씨티은행은 최근 신용대출 영업도 강화하고 있다. 상장기업의 임.직원과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연 8~9% 안팎의 낮은 금리로 3~5년간 5천만원까지 신용으로 빌려주는 상품을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