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아산(峨山)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 1주기 추념세미나가 20일 오후 서울 조선호텔에서 현대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고인이 남긴 업적을 학문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참석자들은 정 회장의 경제적인 기여 뿐 아니라 사회.정치 등에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조명했다. 다음은 주요 발표자의 발표내용 요약.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 국졸 출신인 정 회장의 인생철학과 창의력의 토대는 책과 함께 어릴 적부터 체득한 유교적 가르침이었다. 그는 기업도 가족의연장으로 봤고 현대가 다국적 기업으로 팽창한 뒤에도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공것'은 없으며 기업인과 장사치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돈 놓고 돈버는' 장사를 부도덕하게 여겼다. 이 때문에 국제금융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와 현대는 이에 맞는 구조조정을 하는데 실패했다. 이 `부유한 노동자'는 가족경영으로 거둔 남다른 성과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순간에 신화로 승화됐다. ▲정진홍 서울대 교수 = 정 회장은 감상적(感傷的)인 사람이었다. 냉혹한 현실을 합리적.분석적으로 극복하기보다 감상적 성찰을 통해 꿈을 이뤘다. 그 꿈은 또한`눈감은 꿈'이 아니라 `눈 뜬 꿈'이었다. 소떼를 몰고 북녘으로 가던 모습은 한평생 감상과 낭만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삶을 산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준 드라마였다. ▲이규행 ㈔한배달 회장 = 정 회장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지만 그의 정치 참여는 오히려 돋보이는 것이었다. 경제발전에 따른 산업자본의 정치세력화를 이끌었고 `3金 정치'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한 도전이었으며 박정희(朴正熙) 시대를 마무리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중간자로서의 정주영이 없었더라면 YS와 DJ는 극단적 대결로 치달았을 것이다. 그는 대권 도전에 실패했지만 소떼를 몰고 방북, 금강산관광을 이끌어내 남북평화에 기여하는 등 `더 큰 정치'를 했다. ▲송병락 서울대 교수 = 잭 웰치 GE 회장은 가난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자신감이라고 했다. 정 회장이 남겨준 가장 큰 유산도 `하면된다'는 자신감이다. 웰치 회장은 남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했다. 소떼를 몰고 방북하고, 낡은 유조선으로 바닷길을 막고, 조선소와 배를 동시에 만들고, 조선소 건설부지 사진만으로 선박을 수주한 정 회장은 웰치 회장같은 선진국 기업가들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독창성을 갖고 있었다. 웰치 회장은 선배들이 이뤄놓은 기업을 가장 좋은 환경에서 경영했지만 정 회장은 황무지에 조선소를 만들었으며 반기업적 사회풍토를 친기업적으로 바꿔가며 기업을 일으켰다. ▲송복 연세대 교수 = 경제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한국사회.정치 선진화에 정 회장이 기여한 점은 국민의 성취동기를 높였고 당시 지식인들에게 팽배했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동구가 무너지기 전까지 기세가 계속됐던 사회주의 이념이 폭발하지 않은 것은 정 회장이 불어넣은 성취를 위한 의욕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기자 keykey@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