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애질런트 테크놀로지' 사례 ] 미국의 애질런트 테크놀로지(Agilent Technologies)는 1999년 휴렛팩커드(HP)에서 분사된 정보통신분야의 하이테크 기업이다.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다. 분사된 기업이긴 하지만 이미 해외부문 종업원이 2만여명으로 미국내 종업원 숫자와 맞먹는 글로벌기업이다. 애질런트는 지난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0여년 만에 찾아온 미국의 경기침체로 고객회사들이 죽을 쑤는 상황에서 애질런트도 예년의 영업실적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결국 10%의 급여삭감을 단행한데 이어 작년 11월에 발표한 것까지 합쳐 1만명에 가까운 인력을 내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업원들은 애질런트를 '일하기 훌륭한 기업'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하고 있다. 로버트 레버링은 "현재 애질런트에 다니고 있거나 이미 그만뒀거나 아니면 곧 그만 둘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본 결과 회사에 대해 악담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애질런트는 올해 일하기 훌륭한 포천 1백대 기업중 31위를 기록, 1년 전의 46위보다 오히려 순위가 높아졌다. 애질런트가 보여준 부작용 없는 구조조정의 비결은 바로 '열린 경영'이다. 애질런트의 최고경영자(CEO)는 네드 반홀트(Ned Barnholt). 그는 분사되기 전부터 HP에서 35년간 근무했으며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이다. 반홀트 회장은 구조조정을 하기에 앞서 회사가 인원 감축을 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가를 숨김없이 공개했다. 회사는 일단 전직원의 급여를 10% 삭감하기로 했다. 2000년 3분기에 6천5백달러였던 종업원 1인당 평균 순익이 2001년 2분기에는 1천9백달러로 줄어든 위기상황이었다. 종업원들은 급여가 줄어들었음에도 희색이었다. 임금삭감을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3분기에만 애질런트는 2억5천만달러어치의 계약 취소 주문을 받았다. 적자는 당연한 것이었고 인원감축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반홀트 회장은 사내 방송을 통해 해고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나아가 중간관리자 3천명을 미국내 각 사업장에 보내 일일이 의견을 청취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도록 했다. 그는 모든 종업원에게 6개월 동안 1주일에 두 번씩 이메일을 보내 회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솔직담백하게 들려줬다. 그 과정에서 풍랑속을 헤쳐 나가는 작은 배의 선장과도 같은 반홀트 회장의 지치고 힘든 모습이 여과없이 종업원들에게 전달됐다. 구조조정을 시행한 후 3개월쯤 지나자 종업원들 사이에서는 "내가 회사를 떠나는 것이 회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나갔다. 애질런트의 경우는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