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 3년동안 12조원의 이익을 내고 선진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체제하에서 실행된 강력한 구조조정의 결과였다. 삼성의 구조조정은 일찍부터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신경영'을 제창한 이건희 회장,위기관리와 전략경영의 연금술사들이 모인 구조조정본부,각 분야 최고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영진 등 '3각 편대'의 위력이 발휘된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IMF체제는 삼성전자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내몰았지만 신경영이 자리를 잡게 되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 셈이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지난 98년 7월말 오후 한가롭던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 검은 세단들이 줄지어 나타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윤종용 당시 사장을 비롯 이윤우 사장,진대제 부사장 등 사장단과 본사의 부문별 최고임원 등 30여명의 삼성전자 수뇌부들이 굳은 얼굴로 속속 차에서 내렸다. 이날 회의의 명칭은 '생존대책회의'. 윤 사장은 해외부문의 부실이 확대되고 일부 사업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7월 한달 동안에만 1천7백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낼 것이 확실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난상토론 끝에 나온 결론은 30%의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것. 이제부터는 회의 참석자들도 모두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다. 이날 회의는 참석자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다. 생존 차원의 구조조정에 시동을 건 것은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98년 3월22일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기념 메시지에서 "우리는 지금 생존마저 확신할 수 없는 창업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명예까지 내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성대하게 치르려던 60주년 기념 축제행사는 이같은 분위기에 눌려 취소되고 말았다. ◇첨단제품 메이커로의 탈바꿈=한계사업이나 비주력사업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수익성 높은 사업 위주로 구조를 재편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흑자사업이라도 장기비전과 맞지 않으면 정리대상에 올랐다. 98년 한해 4천억원의 매출에 1천억원 가량의 이익을 내고 있던 부천공장의 전력용 반도체사업도 페어차일드사에 팔았다. 이 회장이 사재를 들여가며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공장이었다. 이 회장은 하지만 "회사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처분하는게 구조조정"이라며 "나의 정서는 감안하지 말라"고 강조하며 철저한 사업재편을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97년과 98년사이에 소규모 가전제품과 무선호출기 사업등 34개 사업과 52개 품목이 정비됐다. 오디오 사업은 중국의 후이저우공장으로 완전히 이관됐고 청소기 등 소형가전 제조는 삼성광주전자로 넘어갔다. 서비스와 물류부문등 42개 저부가가치 사업이 분사돼 떨어져 나갔다. 한국HP 지분 45%를 HP에 전량매각하는 등 각종 자산도 매각됐다. 해외부문에서는 대형 만성적자법인 12개가 정리되고 40%의 인력이 축소되는 등 강도가 더 셌다. 97년에서 99년말까지 재고는 4조1천억원에서 2조1천억원으로,채권은 4조6천억원에서 3조1천억원으로 줄었다. 96년말 국내외를 포함해 8만5천명에 달하던 인력은 99년말 5만4천명으로 줄었다. 구조조정본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회장은 구조조정을 통해 가전중심의 회사에서 선진형 전자업체로의 새로운 모습을 그리도록 했다"며 "요즘 고전하는 각국 가전업체들과 차별화되는 기틀이 이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신경영'의 성과=IMF관리체제 이후 시작된 구조조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사업부 직원들은 "여태까지 반도체나 다른 사업을 키워준 사업부가 어딘데 이제 와서 정리하느냐"며 반발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반발은 곧 수그러들었다. 이 회장이 지난 93년부터 "마누라를 빼고는 모두 바꿔라"고 주문하는 '신경영'을 주창해왔던 만큼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가 쉽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변해야 산다는 신경영이념이 확산돼 있었던 점이 다른 기업들과 달랐다"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던 것을 IMF를 계기로 실현에 옮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본부는 근본적인 혁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계열사들을 샅샅이 뒤져 그동안 숨겨졌던 부실과 무수익자산 등 각종 문제점을 찾아냈다.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통해 조사결과를 공개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설득했다. 구조조정본부 핵심들은 "회사를 살리지 못하면 다 그만둘 수밖에 없다. 죽기를 각오하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며 다그쳤다. 부실이 드러난 만큼 계열사 사장들도 더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계열사들에 대해 비용 및 조직 30% 축소,부채비율 2백% 달성 등 일반적인 구조조정기준이 제시됐지만 훨씬 고강도의 방안을 요구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상시구조조정체제를 갖추고 있다. 지난?MP3사업 등을 분리한데 이어 공장자동화사업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란 어려울 때 한번 해치우는 일회성 사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여건에 대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 ------------------------------------------------------------------------------ 특별취재팀 = 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 강현철, 이익원, 조주현, 김성택, 이심기, 정지영 기자. .............................................................................. ◇알림:이 시리즈는 매주 월.목요일자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