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수입철강에 대해 관세부과를 결정하자 유럽에서는 국제 정치에 이은 경제 분야의 미국식 일방주의라며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권출범과 함께 일찍부터 유럽에는 힘의 우의를 바탕으로 한 미국익 밀어붙어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왔던 게 사실이다. 이같은 우려는 지난해 9.11테러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확연히 드러난데 이어 이번 수입철강 관세부과로 재확인됐다는 게 유럽의 여론이다. 유럽은 특히 부시 대통령이 올초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확전 분위기를 조성하자 프랑스, 독일, 영국 등 3강국을 중심으로 국제안보를 위협하는 '단순 일방주의'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유럽연합(EU)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 이후 이라크나 북한에 대해 전쟁도발 의사가 없다는 신호를 보내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를 보여왔다. 그러나 다시 수입철강 관세부과건이 불거지자 유럽은 '위선' '일방주의' '철저한 국내 선거용'등으로 표현하며 경악을 금치못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미국의 결정에 대해 "받아들수 없는 심각한 조치"라며 "유럽은 일치단결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분명히했다. 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역시 "수락할 수 없다"며 "세계시장의 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레프 파그로트스키 스웨덴 통상장관은 미국이 그동안 자유무역과 시장개방 원칙을 표방해온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위선적인 것이며 EU 미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할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랑스의 유력신문인 르몽드는 6일 사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에서도 원칙과 신념에 충실한 근본주의자, 시장통합에 의한 성장이념가를 표방해왔다"며 이번 조치는 "그때문에 훨씬 더 위선적으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르몽드는 부시 대통령의 방법론과 결정 자체가 잘못됐다며 그가 "힘과 권리를확신하고, (유일 강대국으로서) 처벌받을 두려움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선과 악을 규정함으로써 일방주의를 다시 확인시켰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이번에 흥분하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수입철강 관세부과로 유럽 철강업계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대미 철강수출 감소뿐 아니라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던 제3국 철강제품이EU 시장으로 넘어오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이때문에 유럽은 미국의 이번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한편 철강제품 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은 또 이미 십수년 전에 현재 미국과 같은 철강산업 위기를 경험하고 엄청난 고통 속에 구조조정을 감행한 바 있어 더욱 분노하고 있다. 당시 수많은 실업과 막대한 재정지원을 감수하며 가까스로 구조조정을 마쳤던 유럽은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국내 철강업 구조조정을 미룬 채 그에 따른 고통을 해외에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유럽의 비난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나오고있기도 하다. 유럽은 수출기업에 대한 조세감면을 가능케하는 미국의 해외판매법인법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WTO의 판정 이후에도 대미 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보복조치를 유보해왔다. 그런데도 미국이 EU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번 조치를 취하자 앞으로 미국이자국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이 돌출할 때마다 이같은 일방주의적 태도를 계속할지 모른다는 것이 유럽의 고민이다. 9.11테러사태를 계기로 세계 유일강대국의 지위를 굳힌 미국이 자국 이익을 밀어붙이는 한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자 부자나라들인 EU조차 이를 제지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