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를 만드는 여인(輿人)은 사람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장인(匠人)은 사람이 일찍 죽기만을 기다린다. 이는 여인이 더 선하고 장인이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부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안 팔리고 이와 반대로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려 나가지 않는다' 최근 완역된 '한비자'(한비 지음, 이운구 옮김, 한길사, 전 2권, 각권 2만5천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하는 일이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 이득과 손해보는 계산이 서로 다르다는 얘기. 이는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기원전 233년, 한 때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진나라 승상 이사(李斯)의 계략에 휘말려 옥사한 한비(韓非). 그가 남긴 55편의 글을 엮은 것이 곧 '한비자(韓非子)'다. 한비는 인간관계의 핵심 고리를 이(利)로 파악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지향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가 엇갈려 대립하는데 그것은 결코 사랑이나 미움 때문에 일어나는 반목이 아니다. 그는 이것을 공리적으로 치밀한 계산에 의해 전개되는 일종의 투쟁상태라고 본다. 임금과 신하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관계도 이렇게 파악한다. '권력이란 군주에게 연못과 같으며 신하란 그 권력 속의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가 연못에서 튀어나오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군주가 권력을 신하에게 빼앗기면 다시 돌려받지 못한다' '후비(后妃)나 부인, 태자는 군주가 빨리 죽었으면 한다. 그러므로 자기 죽음을 이(利)로 취할 수 있는 자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한비자'는 일단 제왕학이요 군주론으로 볼 수 있지만 더 좁혀 들어가면 리더가 조직구성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관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는 신하(직원)가 군주(경영자)의 울타리를 빠져 나가거나 반기를 들 수도 있다며 이에 대한 전략까지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비 철학의 바탕인 법(法), 술(術), 세(勢)의 3대 요체가 나왔다. 이 가운데 법은 지금의 실정법, 술은 신하를 통제하는 권모술수, 세는 법과 술을 발휘하는 힘(권력)이다. '한비자'는 정치학뿐만 아니라 철학.문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른 고전이지만 그동안 완역본이 없었다. 여태까지의 번역본은 대개 축약본이었다. 역자인 이운구 전 성균관대 교수는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백자 원고지 5천장 분량의 방대한 첫 완역본을 내놓았다. 그는 곧 '순자' 번역도 시작할 예정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