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난해와는 딴 판입니다.큰 이슈도 없거니와 뭔가 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공정거래위원회 분위기에 대한 내부 직원의 귀띔이다. 지난해 설립 20주년을 과시하듯 뉴스의 초점이 됐던 공정위가 규제완화라는 대세에다 정권 말기를 맞아 맥빠진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해 공정위의 기세는 대단했다. 출자총액 규제,편법증여 등의 문제를 놓고 재계와 한판 승부를 불사했고 언론사를 상대해 시장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조사도 벌였다. 수석부처인 재정경제부와도 '재벌'에 대한 인식과 규제범위를 놓고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이같은 기세가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한풀 꺾인 모습이 확연하다. 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놓고 재경부·재계 연합군과의 힘겨루기에서 완전히 밀리면서부터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대기업 집단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대폭 축소됐으며 내부적으로는 재경부와 재계의 압력에 완전히 밀렸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시행령의 일부 조항은 삼성자동차 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실패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뒷처리나 해주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침체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 시장구조 개선작업과 계층별 민원사업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국민들이 피부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분야에 손을 대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한때 대기업들의 사업을 쥐락펴락했던 공정위가 이제는 학원 사채업자 연예인 등을 상대하는 게 주업무가 됐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공정위의 업무중심도 대기업 규제를 담당해온 독점국에서 소비자보호국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정권 말기여서 새로운 '깃발'을 들고 이슈를 만들어보자고 나설 분위기도 아니다. 하도 이슈거리가 없어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학 행사인 모의 공정거래위원회라도 확대토록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공정위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또다른 요인은 막연한 '앞날'. 산하기관이 없어 내부 승진외에는 인사적체를 풀 수단이 없다는 것. 규제완화라는 시대적 흐름은 점점 공정위의 권한을 줄이도록 압박하고 있다. 공정위 직원들은 이제 '쿠오 바디스'(어디로 가나이까?)라고 한탄해야 할 판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