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를 비롯한 공기업 민영화 작업이 물 건너 가지 않는냐'는 분석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25일 새벽 철도 및 가스 발전 노사 협상이 파업으로 치달은 것은 '민영화' 매듭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민영화의 관건인 관련 법안을 처리할 국회가 공전중인데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차체 선거와 대선 등 표를 의식한 나머지 어느 쪽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꺼리고 있는 것. 물론 재경부나 기획예산처같은 경제부처들은 이날 '파업으로 인한 민영화 연기론 부상'을 의식한 나머지 기자회견을 자청, '후퇴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정치논리를 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정치논리에 밀리는 민영화 =철도 민영화 주무부처인 건교부는 지난해 12월17일 철도 민영화 관련 법안(철도산업 발전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 한국철도시설공단법)을 국회에 올렸다. 올 7월까지 기존 철도청과 고속철도건설공단을 통폐합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설립,철도와 고속철도 건설 및 유지.보수를 맡기고 운영은 2003년 7월까지 정부 전액출자로 신설되는 '철도운영회사'에서 담당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 운영회사의 주식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매각, 완전 민영화할 방침이다. 현재 10조원에 달하는 철도 관련 부채(철도청 1조5천억원, 고속철도 8조4천억원)는 고속철도 건설이 계속되면서 2020년엔 28조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미적거렸는데 이번 연대파업으로 일이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법안 처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지난 18일 위원장과 여야 간사, 건설교통부 장관, 철도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철도 민영화 법안에 대한 국회 처리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여야는 철도 구조개혁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들어 건교위 차원에서 공청회 등 충분한 검토와 국민여론을 수렴한 뒤 법안 처리방향을 결정키로하고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이어 지난 22일 열릴 예정이던 건교위 회의도 무기 연기됐다. 건교부는 "철도 민영화가 무산될 경우 운영 주체가 불확실해지는 고속철도가 부실화하고 철도청의 적자도 더욱 불어나는 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시큰둥' =건교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은 "현재로선 철도 민영화가 시기상조라는게 건교위 의원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간사인 설송웅 의원은 "철도청과 철도노조간에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조기처리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고,한나라당 백승홍 간사도 "정부의 민영화 방안이 급조된 것이라 운임 적자노선 고용불안 등에서 문제가 많다"며 "올해 안에는 처리가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부처 입장 및 반응 =재정경제부 실무자들은 여당의 '변심' 조짐에 겉으론 펄쩍 뛴다. 관련입법 등을 스케줄에 따라 나름대로 착실하게 준비해온 정부로선 '이번 파업으로 흔들릴 경우 재추진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정치권의 후퇴 조짐을 애써 외면하려는 눈치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여당의 후퇴 얘기가 사실이냐"면서 "파업 한번에 밀릴 순 없다"는 강경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경제부처 일각에서도 현실적인 타협불가피론이 나오고 있다. 임박한 지자체 선거 등 이미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과거에도 철도를 민영화하겠다는 법안을 만들었는데 시행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