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중대기로에 직면해 있다. 노동계가 철도.발전.가스 민영화 반대를 명분으로 총파업에 나선데다 임기말과 정치계절을 맞은 정부도 민영화를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파업사태를 계기로 현 정부 임기 내에서 더이상의 공기업 구조개혁은 물 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환란과 함께 출범한 현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공기업 민영화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민간부문에 대해 뼈를 깎는 구조개혁을 강요하면서 공기업 부문을 무풍지대로 남겨 놓을 수 없었으며, 환란수습을 위한 재원조달을 위해서도 공기업 처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서 추진된 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지금까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포항제철 한국중공업과 같은 거대 공기업의 민영화가 완료되었고, 한전의 발전 자회사 분할, 한국통신 지분 매각 등 핵심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수순을 착실히 밟고 있다. 아울러 공기업 자회사 28개를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하고, 추가로 28개 자회사를 정리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총 18조원의 매각수익을 올려 정부 몫인 9조2천억원을 환란극복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1백5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말에 가까워 오면서 노동계가 철도 발전 가스 등 핵심 사회기간시설에 대한 민영화를 반대하고 나서면서 암초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민영화에 따른 요금인상과 공공성 훼손, 고용불안 등을 표면적인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임기말을 맞은 현 정부의 민영화 추진의지를 시험해 보고 근로조건에서도 양보를 얻어 내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철도구조개혁법안이나 발전산업구조개혁법에는 노동계가 염려하는 공공성 확보장치는 물론이고 고용승계도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파업사태는 개혁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간 힘 싸움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민영화 정책에서 후퇴할 경우 현 정부의 개혁정책의 중단을 의미하게 되고 이는 전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와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는 무작정 민영화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민영화 과정에서 고용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하는 한편 민영화 과실이 종사자들에게 최대한 돌아갈 수 있도록 투쟁방향을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지난해 4월 노.사.정 합의까지 거친 발전 자회사 민영화까지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노.사.정 합의를 뒤집을 뚜렷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도 언제 될지도 모를 철도 민영화 문제를 제기해 노동계와 불필요한 갈등을 조성해서는 안된다. 정부 직영의 독점체제인 철도를 공사 체제도 거치기 전에 민영화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철도와 마찬가지로 정부 독점이었던 전화사업이 공사 체제를 거쳐 민영화로 가는 길은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선 공사 체제로 전환해 수익성과 서비스를 중시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킨 후 민영화 여건이 조성되면 그 때 민영화를 거론하면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민영화를 둘러싼 갈등은 정부와 노동계간 타협이 이뤄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철도에 있어서는 공사화만 하고 민영화는 거론하지 않는 것으로 정부가 양보를 하고, 발전 자회사 민영화 문제에 있어서는 노동계가 노.사.정 합의를 지키는 것으로 양보를 하면 서로 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영화 정책에 대한 정부와 노동계의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 한경종합연구소장.논설.전문위원 kghwch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