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아들을 둔 주부 정모씨(46.서울 강남구 대치동). 5년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분당 신도시로 이사갔던 그는 아들의 수능시험이 끝나자 마자 다시 서울 강남으로 옮겨 왔다. 수능성적이 기대이하로 나온게 아무래도 신도시 학원의 수준 탓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강남으로 회귀하기로 작심했던 것. 아들의 재수를 위해서도 그렇고 올해부터 평준화지역으로 변하는 분당에서 딸(중2)을 교육시켰다간 서울시내는 커녕 수도권 대학에도 보내기 힘들 것이라는 이웃의 충고도 크게 작용했다. "분당은 그동안 비평준화 덕분에 한해에 4백명씩 명문대에 진학시켰는데 올부터 평준화되면 강남과 경쟁에서 밀릴 것이 뻔하죠. 분당의 모든 수준을 강남수준으로 키운다는 입주초기 정부의 말을 믿고 이사갔던 것이 후회막심이네요" 정씨처럼 강남을 떠났다가 이른바 '교육 프리미엄'에 홀려 강남으로 다시 'U턴'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강남 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게 강남 부동산가와 교육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래서 '수능집값'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도곡동 붐타운 공인중개의 남건희 사장은 "올해부터 신도시 명문고들이 평준화로 별볼일 없어진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서울 '회귀' 현상이 일고 있다"고 분석하고 "강남 아파트 수요의 약 20% 정도는 교육 프리미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교육환경을 좇아 강남으로 =강남 러시 현상은 서울시 교육청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작년초부터 11월까지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한 인문계 고교생 수는 총 3천8백43명으로 2000년 같은 기간의 2천9백66명에 비해 29.6% 증가했다. 서울 전입생중 강남 전입은 6백77명으로 2000년의 4백89명에 비해 38.4%나 늘었다. 또 서울 여타 지역에서 강남지역 학교로 전학한 고교생도 6백11명으로 2000년(4백68명)대비 30.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른바 '교육이사'의 급증은 지난해 말을 전후해 서울 강남일대 아파트 가격의 이상폭등 현상을 이끌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34평형의 매매가는 수능이 끝난 작년 11월이후 2개월만에 1억5천만원이나 치솟았다. 도곡동의 34평형 삼성 래미안 아파트도 같은 기간 5천만원 이상의 오름세를 보였다. 같은 강남이라도 유명 학원 등이 몰려 있는 대치동 아파트가 '수능집값'을 선도했다. 한 블록만 떨어져도 매매가가 수천만원씩 차이가 난다. ◇ 현실을 무시한 교육정책 =재경부 고위관계자도 "교육문제로 강남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것을 투기단속 등으로 차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이번 대책은 강남지역 아파트값 급등세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한계적인 조치"라고 털어놓았다. 교육문제를 다른데서 풀려고 하니 풀릴리가 없다고 실토한 셈이다. 서초구 삼풍아파트 인근에서 8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박민주씨(45)는 "서울 강남의 집값 폭등을 가라앉히겠다는 정부가 고양, 하남 등 서울 인접지에 임대주택단지를 대거 건설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것은 난센스"라고 비꼬았다. 그는 이어 "서울 외곽에 영세주택단지가 많아지면 강남은 더욱 차별적으로 부상되게 마련인데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집값 안정대책에 포함돼있는 강남 학원분산책 및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파동이 없어도 매년 하는 세무조사인데 새로울게 없다"며 "강남으로 몰리는 교육수요를 분산시키는 연구를 해야지 시장을 억지로 누를 발상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평준화 포기해야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교육제도의 골간인 평준화 정책의 수정이 필요하다"며 "사립 고등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해 교육의 전문화, 특성화, 다양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수연 한국교총 사무총장도 "강남 과열현상은 학교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평준화 제도와 주입식교육, 낙후된 공교육 등 복합적 요인의 산물"이라며 "평준화에 대한 보완 차원에서 여러 형태의 학교 설립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열풍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다른 지역에 교육·문화 인프라 시설을 집중 투자하는 등 '사회정의'차원에서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며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명문고를 부활시켜 인재 충원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