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인 김모씨(37.서울시 동작구 사당동)는 얼마전 '왕따'를 당한다며 울고 들어오는 딸아이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 같은 반 아이들이 "너희 엄마가 선생님께 촌지를 주러 왔다"며 왕따를 시킨다는게 딸아이의 하소연. 반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구스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해 이젠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됐지만 김씨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아이의 학습이 다소 부진한 것 같아서 선생님과 상의하기 위해 학교에 들른게 아이들의 눈엔 그렇게 비춰졌나 봐요. 촌지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이 이 정도로 일반화돼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들이 사회와의 첫 만남인 선생님을 '돈의 잣대'로 평하는 것부터 배운다면 우리 교육은 첫 출발부터 글러먹은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육계의 고질병인 촌지는 바른 인간을 길러내야할 터전인 학교를 부패경제의 온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황수경 상담실장은 "예전에 비해 학교 촌지문제로 상담을 청해 오는 사례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아직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촌지 강요가 물의를 빚고 있다"고 전했다. 요즈음은 금전을 바로 수수하기보다는 물건과 교환(?)하는 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단계판매가 부업으로 뜨면서 교사들이 학부모를 상대로 공공연히 상품판매를 강요해 학교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을 둔 박모씨(40.서울시 관악구 봉천동)는 "학부모회의때 담임교사가 다단계판매를 부업으로 시작했다는 말을 은근히 흘렸다"며 "아이를 맡긴 부모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부담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푸념했다. 일부 일선 교사들의 물품판매행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직접 나서서 16개 시.도 교육청별로 특별감사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파악을 하고 있다. 교사들이 본업이외의 상행위로 내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부의 이영찬 감사관은 "교육청별로 이같은 사례가 수십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연간 수입이 1억원을 넘거나 학기중에 수업을 빼먹고 다단계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경우도 들린다"고 말했다. 다단계판매회사인 한국암웨이의 한 관계자도 "현재 1백20만명 가량의 회원중에 교사가 어느 정도 포함돼 있는건 사실"이라며 "회사측에서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앞으로는 교사회원은 받지 않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학교내 부패사슬은 교실 등을 증축하는 학교공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초 울산에서는 공사대금의 일부를 착복하거나 공사업체로부터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은 70여명의 교육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을 정도. "내사 대상자 가운데 뇌물을 받지 않은 공무원이 없어 처벌수위 조절에 애를 먹었다"는 울산지검 관계자의 말은 학교의 부패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양대 교육학과의 노종희 교수는 "모든 학교비리는 교사를 포함한 교육관련자들이 전문직종으로서의 자긍심을 갖지 못한데서 출발한다"며 "아이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할때 어떤 식의 변명으로도 학교비리는 용인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