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태 < 농림부장관 > 쌀은 농업소득의 52%, 전체 농가소득의 24.6%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농업의 대표 작목이다. 원예작물이나 축산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국민의 기초식량으로서 쌀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작년에 재고가 늘고 쌀값이 하락하는 사태를 통해 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잘 드러난 바 있다. 쌀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다. 70년대 이후 소비가 계속 줄어들어 작년부터는 1인당 쌀소비량이 한 해 90kg에도 못미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리시설 경지정리 등 생산기반투자와 기계화에 힘을 쏟았고 농가의 재배기술수준도 높아져 매년 3천6백만석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됐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매년 늘어나는 최소시장접근물량도 2004년이면 1백43만석에 이르게 된다. 쌀 생산과 소비가 이같은 추세로 나간다면 매년 2백만~3백만석의 재고가 추가로 발생하고 쌀 값 하락과 농가소득 감소라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격지지를 통해 농가소득안정에 기여해 오던 쌀수매도 WTO 협정에 따라 수매예산이 매년 7백50억원씩 줄어들어 이젠 전체 생산량의 15%에 불과하며 지원효과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WTO 도하개발아젠다협상이 3년간의 일정으로 출범했다. 2004년에는 쌀재협상도 예정돼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도출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번 협상이 국내보조와 수출보조 감축, 관세인하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크든 작든 개방 확대는 불가피할 것이다. 농민들이 답답해 하고 때로는 울분을 터뜨리는 데는 이렇듯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농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볼 때 쌀 문제는 어렵고 복잡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산지 쌀 가격이 평균 7~8% 하락했지만 유기농쌀 브랜드쌀 기능성쌀은 높은 값을 받았고 올해 생산예정 물량까지 판매계약이 이미 끝난 예도 많이 있다. 우리 쌀 산업의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정부는 올해부터 고품질 쌀을 전체의 50%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품질 위주의 쌀생산정책으로 전환했다. 고품질쌀을 생산하려면 고품질 품종을 심을 뿐만 아니라 미질이 낮은 밭벼재배를 줄이고 밥맛을 떨어뜨리는 질소비료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품종과 미질을 가리지 않고 섞어서 팔 것이 아니라 미곡종합처리장을 중심으로 고품질 품종 2~3개를 계약재배해 품질을 관리하고 브랜드화, 차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만큼은 농민들의 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농민들이 고품질쌀 생산을 적극 실천하고 여기에 소비자의 호응도 따라준다면 개방의 파고가 높아져도 우리 쌀을 지킬 묘방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실례로 지난 97년 돼지고기 닭고기 시장이 개방됐지만 농민들이 품질향상과 생산비 절감에 노력해 오히려 수출 상품으로 발돋움했다. 돼지고기는 99년 3억4천만달러를 벌어들여 단일 품목으로 최대의 수출액을 기록했고지난해 일본시장에도 진출했다. 지금도 우리 닭고기를 찾는 바이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방확대가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중요한 일보를 내디뎠다. 지난해 농정사상 처음으로 논농업직접지불제와 농작물재해보험을 도입한데 이어 앞으로도 WTO 규범과 합치하고 우리 실정에도 맞는 소득보전장치를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것이다. 지금 쌀 산업이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다. 하지만 농민들이 고품질 쌀 생산에 노력하고 정부가 농가소득안정에 힘을 기울이며 소비자들이 우리쌀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면 쌀 산업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