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역사적인 유로화 실물 통용을 계기로 '유로랜드'가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로화는 실물 도입 1개월여 만에 당초 우려했던 부작용을 일소시키며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경제는 막대한 환전비용 절감과 내수시장 확대를 통해 올해에만 0.5~1.0% 가량의 국내총생산(GDP) 증가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랜드는 유로화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중.동구권 국가의 가입을 적극 유도, 회원국을 현재 15개국에서 2004년 27개국으로 확대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추진중이다. 이를 통해 향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유로화를 미국 달러화와 함께 기축통화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신문은 EU 지역 공관장을 초청, 유로화의 향후 전망과 한국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긴급 지상 좌담회를 지난 5일 개최했다. [ 참석자 ] 김석현 < 駐이탈리아대사 > 박양천 < 駐벨기에.유럽연합대사 > 장재룡 < 駐프랑스대사 > 황원탁 < 駐독일대사 > [ 가나다順 ] 사회 : 최경환 < 한경종합연구소장 > ----------------------------------------------------------------- ● 유로화 실물 통용 △ 사회 =유로화 통용이 시작됐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 황원탁 주독일 대사 =EU 집행위는 도입 2주만에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일부 소규모 거래 물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작은 상점의 잔돈 부족 문제가 발생했지만 당초 우려했던 인플레이션과 위조화폐 급증 등의 부작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로랜드는 유로화 통용으로 오히려 물가와 통화가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전비용과 환리스크 감소로 구매력이 상승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성장잠재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란 얘기다. 또 유로랜드 내의 거래가격이 투명해지고 평준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소비자 혜택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독일의 BMW 자동차 가격은 유로 역내에서 완전 통일됐다. 유로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 김석현 주이탈리아 대사 =이탈리아는 유로화 정착이 가장 늦었다. 통용비율이 60%로 유로랜드 중에서 가장 낮다. △ 장재룡 주프랑스 대사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로화를 도입하는데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이미 실물 통용 전부터 모든 영수증에 유로화 환산가격을 표시하는 등 친숙도를 높여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88%가 유로화 도입을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 사회 =EU 회원국 가운데 영국 스웨덴 덴마크 등은 아직 유로화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 이들 국가의 동향과 동구권으로의 확대 가능성은. △ 박양천 주벨기에.유럽연합 대사 =여론도 지지 쪽으로 바뀌고 있다. 영국은 관망세를 유지하다 실물 통용의 성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내년 6월까지 경제적 평가를 내리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도입 반대론자인 재무장관이 궁지에 몰리고 토니 블레어 총리 등 찬성론자의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덴마크는 내년중 유로화 가입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지난해말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51%로 반대(43%)를 앞질렀다.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도 내년 상반기중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인데 가입 찬성 여론이 덴마크와 비슷한 상황이다. △ 사회 =국제통화질서가 재편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은데. △ 황 대사 =EU 집행위는 최근 유로화 환율이 실물의 펀더멘털을 감안한 균형환율에 비해 7∼8%가량 저평가된 것으로 분석했다.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 환율이 조만간 1 대 1 선까지 회복될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다만 향후 미국경제의 회복 속도 및 강도, 자본이동 등이 유로화 가치 상승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외환보유고의 60% 가량을 달러화 자산으로 보유중이며 유로화 비중은 약 15%선이다. 중국 정부는 유로화 비중을 20% 안팎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도 유로화 비중을 현재 10%선에서 20%선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 한.유럽 경제관계 △ 사회 =유럽경제가 미국경제보다 회복이 빠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유럽경제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나. 또 한국과의 경제·통상 현안은. △ 박 대사 =유럽경제는 지난해 초반까지 안정된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작년 2.4분기 이후 미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의 경기 둔화가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미국경제 호전 여부가 관건이다. 다만 다른 경제권보다는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유로화 실물 통용 효과와 금융시장 통합 노력 등이 긍정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유로랜드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1.3%에서 올해 2.9%로 급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 황 대사 =독일경제도 지난해 0.6%의 저성장에 그쳐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부터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1.4분기에도 0.4%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게다가 연방 재정적자가 GDP의 2.6%까지 올라가 EU 재정안정협약의 한계치(3%)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지난달 실업자가 4백만명에 달해 슈뢰더 총리가 공약한 3백50만명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 김 대사 =독일이 어려워지면 다른 EU 국가도 영향을 받는다. 이탈리아 경제도 독일경제 하강과 함께 침체에 빠져들었다. 올해에도 1.5%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정부 부처에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으려고 노력중이다. △ 장 대사 =프랑스의 작년 성장률은 2.1%로 EU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올해는 2.5%를 점치고 있다. 특히 미국 테러사태 이후에도 소비증가율이 3% 안팎을 기록하는 등 상대적으로 활발한 소비심리와 탄탄한 내수기반이 장점이다. 한.EU간의 주요 통상문제는 조선과 하이닉스반도체 회사채 신속인수, 화장품.의약품 수입장벽, 자동차 시장개방 등이다. 조선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까지 번질 수 있는 만큼 대비책이 시급하다. 프랑스는 사회보장세율이 높아 한국 기업의 프랑스 현지법인이 연간 4백만달러가량을 내고 있다. 이를 낮추기 위해 사회보장협정 체결을 추진중이다. △ 사회 =외국인 투자측면에서 최근 유럽계 비중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은. △ 박 대사 =EU는 지난 99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대한(對韓) 투자 1위국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말까지 EU로부터의 투자 누계액만도 2백27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있으면 투자가 더 들어올리 만무하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한국 등 인접국가에 대한 해외투자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해외 투자자의 최대 관심사인 노동시장 경직성과 노사불안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선결과제다. ● 유럽의 장래문제 △ 사회 =EU의 정치적 통합에 대한 전망도 나오는데 가능성은. △ 장 대사 =유로화 실물 유통은 정치적 통합을 촉진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ECB 개혁문제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ECB는 안정지향적인 통화.금융정책을 고집하며 유로 회원국에 동일한 정책기준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랜드에는 아일랜드처럼 고성장하는 국가도 있고 프랑스나 독일처럼 1∼2%대의 저성장에 머무르는 나라도 있다. 이같이 정치.경제.사회적 여건이 서로 다른 국가들에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 사회 =유로랜드 등장이 팍스아메리카나 등 기존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 김 대사 =팍스아메리카나는 힘(군사력)의 우위에서 정립됐다. EU는 군사력에선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유럽의 경제통합으로 경제 분야는 물론 다자외교 등 국제사회의 정치적 대표성 측면에서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박 대사 =유로랜드 공식 출범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를 약화시키고 다극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현재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경제블록화를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넘어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창설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동남아 중남미 등지에서도 경제블록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블록에서 소외된 한국도 시급히 짝찾기에 나서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정리=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