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의 뉴욕 총회가 4일(현지시간) 폐막됐다. 9.11 테러사건 이후 뉴욕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차원에서 스위스의 스키휴양지 다보스를 처음으로 떠나 뉴욕에서 열린 32차 연례회의는 반(反)세계화운동 단체들의 산발적인 시위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닷새간의 회의 일정을 마쳤다. 총회 장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주변에는 경찰이 겹겹이 배치돼 일반인들의 통행을 차단하고 과격시위를 원천봉쇄하는 등 조치를 취했으며 시위 과정에서 150여명이 연행되기도 했으나 경찰과 시위대간에 심각한 충돌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불안정한 시대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는 지난해 9.11 테러사건 이후 불안해진 세계 정치, 경제 상황과 국가, 민족, 종교간 갈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총회의 가장 큰 특징은 테러를 당한 뉴욕을 지원하기 위해 모인 세계 정치.경제.사회 지도자들이 이번 총회를 미국 땅에서 미국을 성토하는 장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또 가장 중요한 이슈인 세계경제, 미국경제 전망과 관련 참석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올해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외에도 많은 참석자들이 빈곤퇴치, 에이즈 예방 등 세계적인 현안의 해결을 위해 선진국들이 보다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이다. 우선 테러 이후의 세계정세와 관련, 유럽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온 참석자들은 세계정치, 테러 관련 토론장에서 미국을 성토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총회 개막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악의 축'은 총회기간 내내 많은 참석자들간 대화의 화두가 됐으며 총회 주제 자체도 '불안정한 시대의 리더십'이었던 탓으로 회의 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많이 무거웠다. 그간 테러를 당한 미국을 자극하는 것을 자제해 왔던 유럽국가들을 포함, 미국의 우방 지도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를 계기로 지나치게 독주를 하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경제설명회 때는 참석자들이 미국의 대(對)북한 강경자세가 한국경제와 남북관계의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하버드대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국이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명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IMF와 세계은행이 금융지원을 조건으로 빈국에 부과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실패했으며 이 실패의 책임 중 상당부분은 이들 기관의 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측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이번 총회에 참석한 콜린 파월 국무장관, 폴 오닐 재무장관 등 고위각료 2명의 발언을 통해 자국의 기본입장을 반복 옹호했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경제.통상정책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을 가하며 미국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이 농업 및 섬유부문에서 관세 및 보조금 지급 등의 형태로 보호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빈곤국들의 세계경제 편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한 각국 지도자들은 테러 척결전은 이제 무력의 사용이 아니라 빈곤대책 등 지구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은 참석자들이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가장 많은 관심을 나타냈으나 토론 참여자들이 일관된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아 여전히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겼다. 세계경제 전망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통해 컨퍼런스 보드나 모건스탠리딘위터 등의 분석가들 및 주요 국가 고위 관료들은 세계경제 회복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일본의 침체가 지속된다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나타냈다. 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마이클 렛트거스 EMC 회장 등 첨단기술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올해 경기의 회복전망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참석 기업인들에게 올해 경기회복을 전제로 사업계획을 짜는 것은 매우 위험부담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 기간에에 뉴욕시내 일원에서는 법륜공 수련자 등을 포함한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이 비교적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으며 자본주의나 세계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스타벅스, 맥도널드, 갭 등의 점포를 파괴하는 행위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승수 유엔총회 의장이 한국 고위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안정된 세계를 위한 국제연대 구성'이라는 주제의 토의에 주요 토론자로 참석한 기록을 남겼다. 한편 33차 연차총회는 다시 이 총회의 상시 개최지인 다보스에서 열리게 된다. (뉴욕=연합뉴스) 강일중 특파원 = kangfa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