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와 애니콜 단말기, LG전자의 PDP TV...'' 국내 기술력으로 개발돼 세계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명품들이다. 하나같이 땀과 눈물로 일궈낸 연구개발(R&D)의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자체기술로 상용화에 성공한 1백28MD램을 앞세워 메모리반도체 세계시장에서 현재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위인 미국 마이크론사의 점유율 18.7%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지난해 반도체분야에서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약 7천억원을 벌어들였다. LG가 디지털 TV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도 자회사인 미국 제니스사가 특허를 보유한 원천기술 덕분이다. 제니스는 미국식 디지털 TV방송의 표준 전송방식(VSB)칩 기술로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3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 2000년 9월 선보인 고기능 발효유 ''윌''은 국내 유음료시장에서 단일제품으로 전무후무하게 월 2천억원대의 매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R&D에 매달리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들이다. 더구나 세계경제가 통합되고 글로벌화되면서 R&D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산업재편이 보다 활발해지고 제품과 기술이 융합되는 등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연구개발능력은 기업의 ''성장''을 넘어 ''생존''과도 직결되고 있다. 올해 삼성 LG SK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화두 또한 ''미래 성장원천을 찾는 R&D 경영''이다. 이들은 올해 전체 투자규모를 축소 또는 동결하면서도 연구개발 투자는 크게 늘리기로 했다. 심지어는 총 투자금액의 3분의 2 이상을 R&D 투자비로 배정해 놓은 곳도 있다.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추진해온 구조조정으로 생존의 기반은 마련됐다고 보고 올해는 기술경쟁력 강화와 미래 수익사업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올해 R&D 예산을 4조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보다 33.3% 늘어난 규모다. 올해 총 투자비 9조원 가운데 40% 이상을 R&D에 배정한 셈이다. "반도체 및 TFT-LCD 등의 근원적인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연구개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체 투자를 축소하면서도 R&D 예산만은 대폭 증액했다"는 것이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LG도 총 투자금액 5조4천억원 가운데 35.2%에 해당하는 1조9천억원을 R&D에 투입키로 했다. LG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동통신, 정보전자소재 등을 미래 승부사업으로 선정하고 이들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다는 목표를 세워 놓은 상태다. 현대.기아차의 경우엔 올해 총 투자예산 2조1천1백억원 가운데 1조4천6백억원(69.2%)을 R&D 몫으로 배정했다. SK도 올 R&D 투자 규모를 5천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천억원 늘려 잡았다. 국내 기업들의 R&D 투자 개념도 이미 단순한 신제품.신기술 연구에 그치지 않고 ''4세대 R&D''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의 임관 회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R&D 정책 관련 좌담회에서 "삼성은 지난해초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제품으로 창출해내는 4세대 R&D 개념을 도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윌리엄 밀러 미시간주립대 교수(4G이노베이션 사장)가 주창한 ''4세대 R&D''는 기존 제품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시장지배제품(도미넌트 디자인)을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몇가지 산업분야에서 리더역할을 하고 있더라도 새로운 분야에서 도미넌트 디자인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밀러 교수가 말하는 도미넌트 디자인이란 소니의 ''워크맨''이나 시스코의 ''라우터''처럼 그동안 시장에 없던 혁신적인 제품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R&D 투자에 매달리고 있어 앞으로 ''우리가 만들고 세계인이 쓰는 제품''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명품''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