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또다시 ''3월 위기설''이 파다하다. 일본 열도가 이대로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극적으로 회생할 것인가. 일본은 개도국인가, 선진국인가. 일본의 2002년은 이 질문에 어떤 쪽이든 해답을 줘야 한다. 일본인들은 1990년대 이후 10년의 장기불황을 스스로 정의해 ''잃어버린 10년''이라 지칭한다. 세계 최고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에다 근면 검소한 국민성으로도 침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온 세계가 벤치마킹하느라 아우성치던 일본은 이미 과거완료형이 되어 있다. 이제는 아시아 각국에서조차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여기는 판이다. 한때 일본 자금이 록펠러센터 컬럼비아영화사 등을 사들이고 "도쿄 23구(區)의 땅값으로 미국을 송두리째 살 수 있다"던 오만의 뒤끝은 이제 거품 빠진 맥주 신세다. ''제2 진주만 공습''을 경계하던 미국에서도 일본의 ''태생적 한계론''을 거론하며 느긋해진 분위기다. 미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일본식 경제모델의 불가피한 한계라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일본의 노령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는 "일본의 노령화가 노동력을 줄이고 소비를 위축시켜 다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킨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인들은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등 미국 자본주의의 폭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탓이란 시각이 많다. 사상 최악의 실업, 돈을 풀어도 떨어지는 물가 등 일본경제의 한계는 이대로 침몰로 이어질까, 아니면 특유의 결속력과 위기대응력으로 새로운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까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경제위기를 다섯가지 관전포인트로 짚어본다. ◇ 의도적 엔저 =일본정부는 한국 중국 등 주변국 심기를 건드려 가면서까지 엔저를 부추겨 왔다. 시오카와 마사주로 재무상 등 일본 고위관료들은 ''엔화가 좀더 떨어지면 적정할 것''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엔저를 유발하는 목적은 간단하다. 일본의 강점인 수출증대를 통해 경기를 부추겨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 수출업계에서도 지나친 엔저는 별로 득이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체들은 해외 현지생산이 많아 엔저가 되어도 큰 효과가 없다는 시각이다. 가격조정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일본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방증이다. ◇ 제로금리 언제까지 =일본은행의 정책금리(공정할인율)는 현재 연 0.10%다. 2000년말 연 0.50%에서 지난해 세차례(0.35%→0.25%→0.10%) 내렸다. 더 내릴 여지가 없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인플레를 부추기지 못하는 심각한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물가가 뛰고 자산가격이 회복되기까지는 해소기미가 안보인다. 게다가 일본은 재정적자 등 국가채무가 GDP(국내총생산)의 1.5배인 8백조엔에 달해 재정확대 정책을 펼 수도 없다. 금리정책도 재정정책도 펼 수 없는 앉은뱅이 경제대국인 셈이다. ◇ 금융부실 과연 얼마인가 =일본의 금융부실은 공식적으로 32조엔 수준이다. 잠재부실까지 포함할 경우 실제 부실규모는 1백조엔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정부는 10년간 90조엔의 부실을 정리했지만 부실이 생기는 원인(경기침체 기업도산)을 해소하지 못해 부실규모가 좀체 줄지 않는 상황이다. ◇ 정치 리더십 있나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집권 초기 90%에 달하는 지지율을 확보했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율은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의 정치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총리 선출도 파벌간 합의에 의한 것이어서 경제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여기에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잦은 정권교체로 일관성 있는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왕적인 권한을 갖는다는 한국의 대통령도 개혁추진 2년여 만에 밀어붙이는 힘이 약해진 것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 일본형 사회 구조 =노령화가 심각하다. 그러니 소비활성화를 통한 경기대책이 먹히지 않는다. 소위 ''정체사회''의 논리다. 위계질서형 사회 구조는 IT등 신산업에는 지극히 취약하다. 서구형 구조로의 개혁도 그래서 실패하고 만다. 이런 와중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이나 교과서 왜곡파동은 소심한 경제대국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 [ 자료협조 : 삼성경제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