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선거를 앞두고 국내 기업들의 걱정이 태산 같다. 대권을 겨냥한 정치권의 무한 투쟁이 벌어지면 정책 혼선과 이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이 큰 부담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이 선거 자금을 요청해 올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도 난감한 문제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를 대표하는 제조 증권 건설 및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의 이같은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사에 응한 50개 기업 중 59%가 '양대 선거가 기업 경영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한 게 이를 말해준다. 기업들은 양대 선거가 경제에 주는 가장 큰 부담으로 정치 불안에 따른 대외신인도 하락(38.5%)을 꼽았다. 또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 남발(28.2%),레임덕으로 인한 공무원의 복지부동(17.9%),집단이기주의의 만연(15.4%) 등도 우려했다. 대통령 선택 기준으로 경제문제 해결능력(28.2%)과 도덕성(25.6%)보다 지도력(46.2%)을 우선적으로 꼽은 것도 차기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책 혼선을 없애 주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정치권의 '손 벌리기'도 기업들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조사대상 기업의 71.8%는 대선기간중 '정치 자금을 낼 용의가 없다'고 답했지만 자의든 타의든 정치 자금을 지원했던 과거의 관행을 감안할 때 공언(空言)에 가까운 얘기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그동안 정치 후원금을 낸 기업이 절반(51.3%)에 달했으며 연간 후원금 규모가 1억원을 넘는 기업도 전체의 35%에 이르렀다. 기업들이 그동안 후원금 규모를 축소 발표하거나 내지 않았다고 답해온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대기업의 경우 연평균 1억~5억원 정도의 정치 자금을 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때문에 양대 선거가 있는 2002년에는 그 후원 액수가 수십억∼수백억원으로 몇십 배 불어날 것이라는 게 일부 대기업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기업들이 '돈 선거'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법인세 1%를 정치자금화하자'는 정치권의 주장에 대한 반응에서도 잘 나타났다. 기업들은 '이중 부담'(51.3%)이나 '현행 국가보조금만으로 충분'(17.5%)하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했으며 찬성(15.4%)은 극히 미미했다. 기업들은 이밖에 정경유착 관행에 대해 '다소 줄었다'(66.7%)와 '여전하다'(28.2%)는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해 정경 유착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노조나 의사단체처럼 기업인들도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지원금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64.1%에 달했다.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해 로비스트를 양성화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 정치 자금에 대한 기업들의 소극적인 대응자세를 반증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