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학자들은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박사를 미국 경제학계의 대부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직 하바드대학 경제학 교수이며 오랫동안 저명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NBER(미국경제연구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탓이다. 레이건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계 및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눈코뜰새 없다는 말이 꼭 맞을 정도로 바쁜 그를 보스턴 캠브리지에 있는 하바드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신년 대담에서 미국경제회복과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유지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한국이 한단계 더 성장하려면 금융시스템이 보다 혁신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도 여러번 강조했다. [ 대담=육동인 뉴욕 특파원 ] 미국 경제는 지난해 경기침체기에 테러 전쟁까지 겹치는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닥을 통과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월가에서는 올 1분기나 2분기에 V자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주식시장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올해 미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국경제는 늦어도 올 여름부터는 회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미국 경기침체기의 평균 주기를 감안할 경우 지난해 3월 시작된 침체는 올 2월에 끝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의 금리인하,행정부의 감세정책,국제 에너지가격 하락등이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FRB가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속적인 금리인하를 해왔지만 과거와 같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정책이 경기부양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경기부양책을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꼭 그렇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금융정책은 여전히 경기를 부양시키는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정책수단입니다. FRB가 1년전부터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지난 3월께까지 하루짜리 단기금리는 연 5.3%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과감한 금리인하는 최근에야 있었던 것으로 봐야지요. 때문에 금리인하정책이 통하지 않았다고 얘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점입니다" 지난 9월 11일 테러이후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의회에서 논의만 무성했지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언제쯤 다시 확정될 것 같습니까. 실제 부양책이 시행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까. "정부의 부양책이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침체되기 전부터 실시된 주요 감세조치와 낮은 이자율이 결국 경기를 다시 살려낼 것입니다. 지금 미국 경제는 이런 기본 정책외에 추가 경기 자극제가 필요할 정도의 위기상황은 아닙니다. 잘못된 부양책은 자칫 부작용만 키울 우려도 있습니다. 전세계 이코노미스트들이 미국 경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살아나야 자기 나라의 경제도 좋아질 것이란 기대에서지요. 하지만 유럽과 일본 경제도 세계경제회복의 중요 변수라고 판단합니다. 유럽과 일본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국은 쉽게 회복되겠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빨라야 연말께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경제는 그런 기대마저 갖지 못하는게 사실입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정부 정책도 구조조정을 추진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본이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등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과감한 금융 구조조정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중국의 성장이 놀랍습니다. 미국의 어느 백화점을 가도 중국산 제품으로 꽉 차있을 정도지요. WTO(세계무역기구)가입으로 중국의 성장이 한단계 더 레벨업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어느 정도 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보는지요. "중국경제는 당분간 실질적인 성장을 지속할 것입니다. 앞으로 10-12년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는 현재의 두배 정도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중국 대륙으로 쏟아지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중국의 GDP를 늘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중국과 인접한 한국은 중국의 경제변화에 예민합니다. 일각에서는 한국경제의 미국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늘어나는등 한국에서는 "중국붐"이 불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점점 커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그러나 미국 비중을 낮추는 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적어도 한세대, 혹은 더 먼 미래까지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로 남을 것입니다. 비즈니스 경제 과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그때까지雍?미국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지난 97년 경제위기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함께 위기를 겪었던 나라중에서는 그런 예를 찾아 볼수 없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한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강한 경제입니다. 거기에 위기이후 원화의 급격한 절하로 빠른 회복세를 보일수 있었지요. 그러나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경제의 기본여건,이른바 "펀더멘털"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금융시스템입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재벌구조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금융부문을 얼마나 개혁했는지는 앞으로 한국경제가 어느정도까지 성장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재벌위주의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도산이 말해주듯 한국의 재벌들은 요즘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재벌중심의 경제발전이 계속 필요한 것인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재벌구조는 장기적으로 주주의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본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할수 있습니다. 현행 재벌구조가 자연스레 지주회사형태로 바뀌게 될 것이란 얘기지요. 재벌구조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주의 역할을 강조하는 지주회사는 현재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대기업 소유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같은 재벌구조의 변화와 함께 중소기업들이 성장할수 있도록 각종 장벽이 제거돼야 합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신용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돈을 쉽게 쓸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그래야 중소기업들이 재벌들과 함께 균형성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차례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권고를 받은 아르헨티나가 결국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습니다. IMF는 지난 97년 경제위기당시 한국에도 많은 정책권고를 했었지요. IMF의 권고사항이 앞으로도 경제개발국가들이 따라야할 "교과서"인지요. "IMF는 당시 한국정부에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크게 두가지를 권고했습니다. 단기적인 권고는 통화가치를 유지하기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과 예산을 긴축운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둘다 적절한 어드바이스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인한 피해가 더 컸습니다. 장기적인 권고는 구조개혁이었습니다. 구조개혁안에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결국 올바른 것은 금융구조개혁등 한두개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권고사항은 위기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등 동아시아국가는 앞으로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이 미국에서 아시아권으로 넘어오거나 최소한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룬 것이란 희망이지요. 21세기 세계질서를 어떻게 내다보는지요. "21세기는 세계가 다극화되는 세기가 될 것입니다. 아시아 유럽 미국이 각각 한 극을 형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각 세력권이 얼마나 응집력을 갖고 국제적인 정책을 수립해야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군사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미국이 최소한 향후 수십년간은 지배적인 국가로 남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합니다. 다른 극에서 막대한 군사비지출이 쉽지 않은 탓이지요. 이런 "예상"을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가 당장 미국을 따라잡을 만한 군사비용을 지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