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벤처업계 최대의 시련기였다. 지난해 중반부터 국내외 경기가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자 반도체장비 통신장비 인터넷 소프트웨어 바이오 등에 집중돼있는 국내 벤처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소비위축에다 대기업의 투자축소로 미처 뿌리도 내리지 못한 벤처기업들이 휘청거린 한해였다. 특히 "9.11 미국 테러사태"이후 투자심리가 더욱 얼어붙고 각종 게이트가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벤처업계에서 "겨울이 더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졌다. 다행히 내년께 경기가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주식시장이 다소 활황을 보이면서 "봄이 멀지 않았다"는 낙관론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벤처업계는 기술개발 해외수출 등으로 돌파구를 찾는 한편 인수합병(M&A)등 구조조정을 통해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 ◇양적으로는 팽창=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 11월말 현재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은 업체는 모두 1만1천3백65개다. 지난해 말에 비해 2천5백67개 늘어났다. 벤처기업 수는 지난 4월 1만개를 돌파한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벤처기업의 기업 공개도 활발했다. 올해 코스닥 증권시장에 신규 등록된 기업은 1백66개이며 이 중 1백29개(77.7%)가 벤처기업이었다. 하지만 올들어 벤처 지정이 취소된 기업만 2백개를 웃돌고 활동하지 않거나 다른 업체로의 M&A(인수합병)를 모색하고 있는 기업도 상당수에 달해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성숙은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기침체로 벤처 신음=세계적인 IT(정보기술) 불황이 벤처업계를 강타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반도체 메이커와 SK텔레콤 KT 등 통신서비스 업체들이 설비 투자를 대폭 줄인 것이 벤처 위기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였다. 반도체장비 회사나 통신장비 회사의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평균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기업이 구매 단가를 낮추는 바람에 수익성도 악화됐다. 다만 게임 보안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는 성장해 대조적이었다. ◇각종 게이트로 몸살=벤처업계는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각종 사건으로 상당한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지난해 사건인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의 은폐 및 정치권 로비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삼애인더스의 이용호 게이트와 패스21의 윤태식 게이트가 불거짐으로써 벤처업계는 1년 내내 게이트에 휘말렸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벤처업계 전체가 복마전 아니냐는 시선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구조조정과 활로 모색=벤처업계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영진 개편 및 인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전개했다. 벤처업계 1세대인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이민화 메디슨 회장,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오상수 새롬기술 사장 등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반도체장비 및 통신장비 회사들을 비롯한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인원 감축 및 조직 축소를 단행했다. 일부 기업은 자회사 혹은 모회사 자체를 넘기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은 이와는 별도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 등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등 기초 체력을 탄탄히 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업계 내부에 상당한 구조조정이 진행돼 경쟁력이 강화됐다"며 "경기가 돌아설 때쯤이면 제2의 벤처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