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는 한 여름에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는다. 경제난이 3년8개월째 지속되지만 모라토리엄(외채 지불유예) 선언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인들은 성탄절과 연말연시 대목이면 짭짤한 수익을 올려왔으나 올해는 예외였다. 예금인출 제한조치에 이어 한 차례 폭풍과도 같은 소요사태가 지나고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나오자 너나 할 것 없이 씀씀이를 크게 줄이면서 쇼핑이나 외식은 커녕지출로 연결되는 외출 자체도 자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록 극심한 불경기지만 성탄절 대목을 노려 비교적 넉넉하게 선물용품을 준비했던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의류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금년 성탄절 대목 매상액이 작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아르헨티나 상공인협회(CAME)의 발표내용으로 봐서도 상인들의 시름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 교민들이 운영하는 의류상점들도 예외는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내 온세와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주로 선물용품점과 의류상점을 운영하는 교민 가운데 일부는 성탄과 연말연시 특수에 대비해 빚까지 얻어 물건을 준비해뒀으나 가격이 10페소(미화 10달러)가 넘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소비심리 때문에 올해 장사는 사실상 `종쳤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목기간에 최고의 매상을 올렸던 상점은 어떤 물건이건 최고 2페소에 판매하는 `토도 포르 도스 페소스'와 식료품 가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상점은 지난해에 비해 판매실적이 10∼15% 가량 늘었던 반면 다른 상점들은 최저 30%에서 최고 55%의 매출감소를 겪어야 했다. 매상이 급격히 감소한 품목은 구두(-55%)와 스포츠용품(-52%)을 비롯해 의류 및외식산업(-50%), 가전제품과 가구류(-45%), 화장품과 보석류, 의류원단, 컴팩트디스크, 피혁제품(-40%) 등이다. 극심한 불황과 경제난으로 생긴 현상중 하나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으로 사람들이몰리되 한 사람당 5∼6페소 정도의 고정된 가격에 음료까지 포함된 식품을 선호하고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포도주 반주까지 곁들이며 2∼3시간씩 식사와 담소를 즐기던 아르헨티나 전통의 `아사도'(구운 고기) 전문식당들은 음식값을 20∼30%씩 내려도 한산하기 그지없다. 1인당 30∼40달러의 비싼 가격임에도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붐볐던 라 플라타 강변의 고급음식점들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한인타운(일명 백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전에는 3명 정도가 소주를 반주로 해 식사를 할 경우 음식값이 100달러를 훌쩍 넘겼으나 지금은 소주에 고기 등 다른 안주를 양껏 먹어도 50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게 교민사회나 상사 직원들의 말이다. 상점 매출이 이처럼 급감하고 물건값마저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 경제난 때문이다. 상공인협회측은 "정부의 초긴축정책으로 월급과 연금 지급액이 깎인데다 예금지급이 사실상 동결되고, 신용카드 사용한도액이 제한을 받으면서 수중에 현금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어느 업종이건매출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bigp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