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장기도 기증하는 마당에 더 쓸 수 있는 자동차 부품의 재활용을 막는 것은 낭비 아닙니까" 8년째 중고승용차를 운전해온 허모씨(37)는 "최근 엔진을 수리하려고 정비소를 찾았다가 정품값이 너무 비싸 수리를 포기하고 아예 새차로 바꿨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1천5백cc 아반떼 승용차의 엔진헤드 정품값은 56만원선. 인건비 10만원은 별도다. 그런데 중고품 엔진을 활용하면 인건비를 포함, 35만원이면 수리가 끝난다. 그렇지만 중고품을 쓰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다 물건을 구하기가 어렵다. 23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9년 현재 국산 자동차의 평균 폐차연령은 7.6년. 일본과 프랑스의 15년, 미국 16.2년의 절반에 불과하다. 신차를 선호하는데다 단종 차량에 대한 정비용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폐차는 '자동차를 해체하지 않고 바로 압축.파쇄하는 것'을 뜻한다. 획일적인 폐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정은 폐자원을 다시 이용, 자원을 절약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진 것이다. 이에따라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왜 재활용인가 =자동차관리법은 중고차 부품중 조향장치 제동장치의 경우 안전을 이유로 재활용을 금지하고 있다. 엔진은 출고된지 3년동안만 재사용할수 있다. 이러다보니 고작 7만∼8만㎞(매년 2만5천㎞ 주행 기준) 뛴 엔진조차 3년만 되면 고철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50만㎞에 이른다는 엔진 수명의 6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에따라 단종된 차나 중고차를 모는 운전자가 제때 중고부품으로 교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 영등포구 K자동차공업사 관계자는 "한달에 10명 정도가 엔진헤드나 일반부품 교체를 희망하지만 사용연한에 맞는 부품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영근 한국자동차폐차협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폐차부품의 재활용을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선진국은 중고부품 재활용 =선진국은 내구연한에 관계없이 폐차부품의 재활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자원을 재활용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유럽연합(EU)은 중고부품의 재사용, 회수에 관한 목표를 설정해 운영할 정도다. 오는 2006년까지 폐차되는 부품의 85%를 재사용하거나 회수할 계획이다. 2015년의 목표는 95%. 독일과 일본은 '재생자원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재활용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폐차와 관련된 규정이나 의무조항조차 없다.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의 임기상 대표는 "생산자 또는 정부 주관으로 중고부품에 대한 실명제나 인증제를 도입해 재사용할수 있는 부품은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자원절약이나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건교부 관계자는 "폐차부품 재활용에 대한 관련 업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데다 폐차부품을 다시 쓰게 되면 사고원인을 정확히 검증하기 어려워 법을 개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