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하면 으레 '중소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 육성하기 위한 국책은행'이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수익경영' '주주중시경영'이란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올해 취임한 기업은행 김종창 행장은 이같은 고정관념을 타파한 CEO(최고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 행장은 지난 5월 취임 일성으로 '돈 버는 은행'을 표방했다. 일부에선 '국책은행이 돈을 벌어서 어떻하자는 거냐'란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행장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돈을 잘 버는 은행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 직원들에게 수익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 기업은행은 올해 창립 이래 최대규모의 흑자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지난 99년 1천8백82억원, 2000년 4천42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올해 4천5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은행의 각종 경영지표도 호전됐다.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11.59%로 은행권 최고수준이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ROA(총자산이익률)과 ROE(자기자본이익률)가 1.01%와 18.86%로 국내 은행의 상위수준이다. 무수익 여신비율도 2.53%에 불과하다. 김 행장이 내건 또 다른 캐치프레이즈는 '현장 경영'이다. "수익의 원천은 일선 영업점이며 영업점이 뛰고 변화해야 은행이 바뀐다"고 김 행장은 강조하고 있다. 은행장이 전국 지점을 순회하고 공단을 찾아가 거래기업을 방문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기업은행의 이같은 변신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지난 5월초 김 행장이 취임 때 3천4백원에 머물러 있던 기업은행 주가는 최근 8천7백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은행주 가운데 최고의 상승률을 자랑하면서 'CEO 주가'란 평가도 나왔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국책은행이라는 보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수익경영을 내건 CEO의 경영철학이 가장 큰 재료중 하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창사이래 처음으로 IR(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주주중시 경영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업은행이 수익성과 주주중시 경영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본연의 역할인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에도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초 기업들이 저리(低利)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은행권 처음으로 시장금리 연동형 시설자금 대출을 시행했다. 또 영업점장의 여신 전결권을 최고 20억원으로 확대해 신속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다. 그 결과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중소기업 지원금액은 16조1천억원으로 목표치인 13조원을 크게 넘어섰다. 대부분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 비중을 대폭 줄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업은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담보위주의 여신관행을 과감히 철폐, 무담보 신용대출을 강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5인 이하 소기업 영세사업자를 대상으로 간이신용평가제를 시행한데 이어 최근엔 자산규모 5억원 이하인 소기업 지원을 위해 '소기업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했다. 이로써 전국 10만여개 달하는 영세기업들이 담보없이 신용으로 최고 1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