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최악을 헤매면서 대만 언론에서는 '3락(落) 3승(昇)'이라는 조어(造語)가 등장했다. '3락'은 뒷걸음질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수출.경제성장률.주가, '3승'은 치솟고 있는 실업률.국민고통지수.자살률을 가리킨다. 이런 현상은 싱가포르에서도 반복된다. 금융.전자.조선 분야의 다국적 기업 집결지로 동아시아의 '별'이었던 싱가포르. 이 도시국가는 요즘 독립(1965년)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 2.4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전년동기 대비)이 마이너스 0.5%를 기록하면서 충격을 안겨주더니 3분기에는 마이너스 5.6%로 뚝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4%의 완전 고용을 자랑했던 실업률은 최근 4%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대량 실업사태에 당황한 싱가포르 정부는 기상천외한 응급 대책을 발동했다. 지난 몇달동안 필리핀계 엔지니어 등 기술직 분야 외국인 취업자들을 소리 없이 추방하는 '공작'을 단행한 것. 현지 언론들은 4분기에는 성장률이 마이너스 10%로 곤두박질 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연구보고서를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다. 독감을 앓고 있기는 홍콩도 다를 게 없다. 지난 3.4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0.3% 후퇴했다. 불과 1년전인 2000년 3.4분기에 10.8%, 1분기에 14.1%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청룡열차'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홍콩에서 경기 급랭이 가장 먼저 체감되는 곳은 유통업계다. 홍콩 최고급 매장으로 꼽히는 랜드마크 백화점은 최근 패션의류 등 주력 상품을 최고 60%까지 할인하는 세일에 들어갔다. 올들어서만 다섯번째의 '특별 세일'이다. 1년에 두 번 이상은 세일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게 오랜 전통이었지만 미증유의 대불황 앞에서 허물어지고 말았다. 대만 행정원 주계처는 최근 작성한 '경제정세 전망' 보고서에서 대만 싱가포르 홍콩 경제의 부진 원인을 '2대 외풍'과 '1개 내홍'으로 꼽았다. 2대 외풍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 대상국들의 동반 경기침체와 IT(정보기술) 산업의 급격한 쇠락, 1개 내홍은 금융산업의 심각한 부실이다. 대만은 수출에 대한 GDP 기여도가 47.9%,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와 홍콩은 GDP의 80% 이상을 해외 시장에 의존할 만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다. 이 중에서도 미국과 일본이 전체 수출 시장의 30∼40%에 이르는데다 컴퓨터 반도체 통신기기 등 IT 제품의 수출 품목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47%(대만)∼64%(싱가포르)에 이른다. 여기에 산업의 위기가 다시 금융 부실로 전환되고 있다. 대만 은행의 무수익 여신비율은 작년말 5.3%에서 9개월새 7.8%로 급등했다. 대만 중앙은행이 올들어 금리를 10차례에 걸쳐 2.25%로 낮췄지만 기업 대출은 4.1%나 되레 줄어들었다.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한국은행 홍콩 사무소의 이상광 소장은 "금융 부문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과잉 설비와 기업부채 누적, 금융산업 부실 가속화와 경기침체 장기화 등 일본형 복합 불황의 파고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이베이.싱가포르.홍콩=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