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요즘 항의성 이메일이 빗발치고 있다. 협박조의 내용도 상당수다. 발신자는 주로 유흥업소, 골프장, 호텔업주들. 김 의원이 지난달 담배에 갑당 80원, 유흥주점 골프장 호텔사우나 등엔 이용료의 15%를 부담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한데 대한 반발이다. 김 의원은 "법 개정에 동의했던 동료 의원들중 상당수가 하나둘씩 고개를 돌리고 있다"면서 "이익단체들의 로비가 이렇게 엄청날 줄 몰랐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각종 이익단체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표에 약한 정치권의 맹점을 파고 들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이들의 목소리는 커진다. 때론 집단행동도 불사한다. 당선이 지상과제인 정치인들로선 굳이 표를 잃어가며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정치인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법안을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정치논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경제논리 위에 서게 된다. 그때마다 경제정책은 뒤틀리고 개혁은 뒷걸음친다. 단적인 사례가 공기업 개혁이다. 김대중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능력과 전문성 중심으로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경영실적이 부진한 CEO는 물갈이하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하지만 '빈말'로 끝났다. 정치권 인사가 권력의 줄을 타고 대거 공기업이나 공기업 자회사 CEO로 내려왔다. 이들 낙하산 CEO들은 소신있게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인기영합책을 썼다. 정치논리에 따른 정책 후퇴의 백미는 내년도 추곡수매가 동결조치다. 정부는 이달초 양곡유통위원회의 쌀 수매가 인하 건의를 묵살하고 올 수준으로 동결키로 결정했다. 농민표를 의식해서다. 이로써 2004년 쌀시장 전면 개방에 대비해 수매값을 내려 농업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정부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는 부평공장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우차 노조에 정치권이 가세함으로써 GM과의 협상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1997년에는 기아자동차와 한보철강 처리가 정치권 개입으로 질질 시간을 끌며 한국 경제를 외환위기까지 몰고 갔었다. 신용협동조합의 출자금을 정부가 보장하게 된 배후에도 정치권이 숨어 있다. 정부는 97년 12월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신협 회원의 출자금을 보호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 심의과정서 여야 정치인들은 의원입법 형식으로 출자금을 예금보험 대상에 슬그머니 포함시켰다. 선거구민들의 압력에 정치인들이 앞장 선 것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신협 출자금을 보호대상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쓰지 않아도 될 공적자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신협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1조9천5백억원에 달한다. 시급한 경제관련 법안 제.개정을 별다른 이유없이 늦추는 것도 고비용 정치구조의 한 단면이다. 각종 공적기금의 운용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 수단인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은 정쟁으로 인해 벌써 1년 가까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나라 살림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선 재정건전화특별법 예산회계법 제.개정이 필수적인데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올해만 2조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건강보험 문제는 시민단체(NGO)의 정치적 논리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한 결과로 꼽힌다. 정우택 자민련 정책위원회 의장은 "의약분업이 약품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선진국형 제도라는 NGO의 얘기에 정치권이 국내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서둘러 도입하는 바람에 건강보험 재정이 만성적 적자상태로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정치논리에 입각한 각종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나라 살림을 멍들게 하고 성장기반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철.김병일 기자 hckang@hankyung.com ----------------------------------------------------------------- [ 특별취재팀 ] 김영규 정치부장(팀장) 김영근 차장 김형배 이재창 홍영식 김병일 정태웅 김동욱 윤기동(정치부) 이학영 차장 오형규(경제부) 손희식 이심기(산업부) 김호영(건설부동산부) 강현철(기획부) 서화동(문화부) 김도경(사회부) 김현석 기자(증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