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2일 포스코에서는 거대한 "빅뱅"이 있었다. 포항제철소 건설을 일컫는 "영일만 신화"에 버금가는 혁명적 변화였다. 포스코는 30개월에 걸쳐 오랜 관행을 바꾸고 조직을 혁신하는 한편 전산망을 새로 구축하고 통합해 이날 개통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지난날 시뻘건 쇳물만 연상시켰던 포항제철이 "디지털 포스코"로 완전히 달라졌다. 포스코의 PI는 전산 담당자 몇명이 며칠간 시스템 몇개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었다. 회사의 모든 시스템을 바꾸고 모든 시스템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도록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더구나 세계 최초로 미국 오라클의 ERP(전사적자원관리)모듈 40개가 모두 적용됐다. 타사 모듈도 23개나 도입됐다. 이 모든 모듈을 통합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포스코는 PI를 추진하는 도중 기존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조직을 고객지향형으로 혁신했다. 프로세스를 재설계한 결과 종래 1천56개였던 업무절차는 5백64개로 감소했다. 물론 이 과정에 일부 직원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게다가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포스코처럼 일시에 모든 시스템을 뜯어고쳐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빅뱅"을 택했던 것은 이렇게 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빅뱅"이후 반년이 지난 지금 포스코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고객사에 판매계획을 통보하는 시점만 봐도 그렇다. 예전에는 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야 그 분기 판매계획을 알려줄 수 있었다. 이 바람에 고객사들은 임시로 짜둔 생산.판매계획을 서둘러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분기 개시 45일전에 포스코의 판매계획을 고객사들에 알려준다. 수주에서 납품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리드타임도 열연강판의 경우 30일에서 14일로 짧아졌다. 업무 효율도 혁명적으로 개선됐다. 가령 월말결산을 하는데 예전에는 6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하루면 충분하다. 분기결산 소요일수도 10일에서 3일로 단축됐고 분기 표준원가계산 기간은 15일에서 3일로,예산편성 기간은 1백10일에서 30일로 짧아졌다. 또 데이터웨어하우스를 활용함에 따라 상황을 분석하기가 쉬워졌다. 가령 종래 5개 부서 직원 10명이 일주일간 끙끙대야 했던 분석작업을 지금은 한 사람이 10분만에 해내고 있다. PI 추진 과정에는 끊임없이 시련이 닥쳤다. 빅뱅 D데이 열흘전에는 마지막으로 테스트하는 과정에 가동용 마스터 데이터베이스(DB)가 파손되는 사태가 터져 가동일을 늦춰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D데이 25일 전에는 주문처리시스템에서 문제가 발견돼 시스템 자체를 변경해야 했다. 또 새로운 원가관리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미국 오라클 본사에 가서 오라클 기술진을 날마다 자정까지 붙들고 테스트와 협의를 반복하기도 했다. 포스코 PI 담당자들은 실패할 경우 동해바다에 몸을 던진다는 "우향우(右向右)정신"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고경영자의 신념과 지속적인 관심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유상부 포스코 회장은 PI를 추진하라고 지시한 뒤 수시로 PI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프로젝트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PI실에 힘을 실어줬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