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부실관리 책임 논쟁이 한창이다. 정책 판단 문제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 진념 부총리와 이근영 금감위원장의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정책판단에 대한 역사의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강경식 전 부총리 등 외환위기 당시 고위 당국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외환위기 당시 IMF 총재였던 미셸 캉드쉬나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 등의 현재 소식도 궁금하다. 외환위기 4주년을 맞아 그들의 근황을 알아본다. 강경식, 김인호, 이경식씨 등 고위당국자 =이들 3인은 외환 위기 때 각각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환란의 주역'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최고위 정책 당국자들이다. 97년 초부터 국내외에서 환란 발생을 경고하는 빨간불이 잇달아 켜졌지만 적절한 대응을 못한데 대한 책임론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특히 강 전 부총리와 이 전 총재는 환란을 목전에 두고 한은법 개정을 놓고 정면 충돌, 더 한층 비난을 받았다.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은 김대중 정권에 의해 직무유기 혐의로 법정에까지 섰으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99년)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전 총재는 환란위기를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한 점이 참작돼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강 전 부총리는 지난해 8월부터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맡아 현업으로 복귀한 상태다. 지난해 3월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부산 동래)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외환위기 과정을 회고한 '강경식의 환란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은 지난달 말까지 경제정보서비스기관인 와이즈인포넷 회장을 지냈고 지난 4월부터는 법무법인 세종의 부설연구소인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경식 전 총재는 고려대 석좌교수 및 21세기 경영인클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태수 한보 회장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97년초 한보 부도에서 시작됐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진로 대농 기아자동차 등의 연쇄 부도를 촉발시켰던 것. 정태수 전 한보회장은 은행 돈 5조7천억원을 빌려 당진제철소를 짓는등 뚝심을 발휘했지만 그 뚝심은 결국 온 국민의 짐이 되고 말았다.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정 회장은 현재 병원과 감옥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정태수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은 3남 정보근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개인 사무실을 차려 놓고 재기를 위해 뛰고 있다. 김선홍 기아 회장 =97년 7월 당시 재계 서열 8위였던 기아자동차 부도는 외환위기의 격발점이 되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은 기아차에 대한 경영권을 고집하며 정부의 기아차 처리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삼성의 기아차 인수 음모론을 제기하고 기아차의 국민기업화를 주장하며 정부와 맞섰다. 김 전 회장은 99년 법원에서 4년형이 선고됐으나 지난해 지병이 악화되면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 =97년 12월3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와 IMF 구제금융 합의문에 서명한 당사자이자 한국 구조조정을 막후에서 지휘 감독한 바로 그 사람.그는 한국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부실한 기업과 금융회사를 가차없이 퇴출시키도록 요구, 온 국민에게 IMF 고통을 체감케 했다. 그는 당시 현직 대통령(YS)뿐 아니라 김대중 등 대선 후보들에게까지 협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해 국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지난해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지금은 프랑스 최대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전망 및 정보연구소(CEPII)'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얼마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황청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13년간의 IMF총재 시절의 경험담을 담은 회고록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휴버트 나이스 IMF 협상단장 =IMF 실무협의단 단장을 맡았던 인물.97년말 IMF의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중병이 든 한국 경제의 주치의로 한손엔 링거(구제금융)를,다른 손엔 수술 칼(구조조정)을 들고 종횡무진 활약했다. 나이스 단장은 IMF를 떠나 지금은 도이체방크의 아시아지역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적인 금융인으로 변신한 셈.도이체방크가 서울은행 경영자문을 맡고 있어 지난 6월엔 아시아지역회장 자격으로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 =97년 당시 미 재무장관을 맡고 있었던 그는 어느 누구보다 한국의 외환위기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증권인 출신인 그는 IMF 구제금융 지원결정에서부터 이후 구조조정 과정까지 미 정부와 월가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의 재임 기간인 95년부터 99년까지 멕시코 페소화 위기를 비롯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모라토??위기까지 전세계 금융시장이 편할 날이 없었다. 이 때문에 루빈을 정점으로 한 미국 금융자본이 의도적으로 국제금융 위기를 유도한다는 소위 음모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금은 씨티그룹 회장을 맡아 친정인 월가로 복귀한 상태. 지난 11월초 서울을 방문한 그는 반나절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진념 부총리,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 등을 만나는 등 여전한 파워를 과시했다. 마크 워커 변호사 =외환위기 당시 외채협상 한국측 대리인을 맡아 크게 활약했다. '클리어리 가트립 스틴&해밀턴'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회사에 소속된 그는 95년 멕시코 외채협상에도 관여하는 등 국제 채무조정분야의 전문가. 그는 외채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정부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2등급)을 받기도 했다. 워커 변호사는 지난 99년 대우그룹의 해외채무 조정협상에서도 자문역을 맡았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