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3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자금을 완전 상환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는 IMF 체제를 졸업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부정적 변화도 적지 않다.

IMF 체제는 기업과 은행에서 밀려난 실업자, 서울역의 노숙자에만 충격파를 던졌던 것은 아니다.

용돈을 받는 초등학생과 수십번째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취업재수생의 고통만도 아니다.

산간도서 벽지의 농어민과 도시의 샐러리맨, 철밥통의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에게까지 충격파는 다가갔다.

물론 스타도 나왔고 대박도 터졌다.

1백50억원에서 다시 추가로 수백억원대의 스톡옵션을 받는 은행장이 나오는가 하면 약관 20대에 거금을 쥔 벤처기업가의 신화도 속속 이어졌다.

한국의 부실자산을 헐값에 대거 수거해간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은 조단위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 동아가 무너졌고 현대가 분가되는 현상이 낮설지 않게 됐다.

이제는 양극화란 말마저도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사회도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1. 저금리 시대 =97년 12월 월평균 24.31%(3년만기 회사채)였던 금리는 현재 4.8∼5.0%(1년 정기예금금리)로 떨어졌다.

1억원을 은행에 맡긴 퇴직자가 손에 쥘 수 있는 한달 예금이자는 2백만원에서 4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기업은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면서 이익을 '창출'했다.

아파트라도 한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집 맡기고 저금리로 돈 빌려 쓰시라"는 공세도 받게 됐다.

국내은행은 물론이고 씨티 HSBC, 외국보험사까지 대출 세일에 가세했다.

신용이 문제일 뿐 은행 문턱은 분명 낮아졌다.

저금리와 함께 고성장 신화도 무너졌다.

저성장은 실업률을 높이고 기업투자의 발목을 잡고있다.


2. 연봉제와 계약고용 =직장 동료들끼리도 급여(연봉)를 묻지 않는 것이 기본상식이 되고 있다.

같은날 입사해도 월급봉투의 두께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퇴직금도 없어져 간다.

신입보다 경력자를, 정기공채보다 수시모집으로 채용시장이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천3백명을 뽑으면서 30%를 경력직으로, 2천7백명을 수시채용으로 뽑은 LG전자는 8백10명을 경력자로 선발했다.

계약고용이 보편화되면서 평생직장 신화도 깨졌다.

이런 현상은 대기업에서 더욱 심하다.

97년 1천3백23만명의 임금근로자 가운데 4백18만명, 1백89만명이었던 임시직과 일용직이 올 10월에는 각각 4백64만명, 2백32만명으로 늘었다.


3. 억대 CEO 부상 =수백억원의 스톡옵션에다 연봉 8억4천만원을 받는 '김정태 류' CEO는 더욱 양산될 전망이다.

코헨 제일은행장, 하영구 한미은행장 등도 각각 10억원, 7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금융부문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 바람은 조만간 제조업으로 건너가 연봉 24억원인 제2의 윤윤수 사장(휠라 코리아)도 속속 나올 것이다.

연봉제가 아니더라도 CEO들은 스톡옵션으로 월급쟁이가 평생 꿈꾸기 어려운 거금을 쥐곤한다.


4. 심각한 취업난 =일부 성공한 경영자들의 화려한 신화 뒤편에는 사회 진출을 도모하는 젊은이들의 피눈물을 짜내는 취업대란이 도사리고 있다.

올가을 신입 은행원 채용 경쟁률은 1백대 1이 기본.

최대 6만개 정도로 추산되는 취직자리를 놓고 45만명의 졸업자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경력자들도 취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전문기술이 없는 일반 직장인, 은행원들이 직장에서 밀려난뒤 할 수 있는 것은 가게를 내는 일 정도.

이렇다보니 반드시 자격증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올해 1천명씩 뽑았던 사법시험과 공인회계사(CPA) 시험에는 전공불문의 대학생들이 몰려든다.


5. 심화되는 양극화 =통계청 도시근로자 소득 조사를 보면 올 3.4분기 상위 10%는 월평균 6백98만원을 벌었다.

하위 10%는 76만원.

차이는 9.12배다.

97년 4.4분기엔 그 차이가 6.65배에 그쳤다.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해도 마찬가지.

97년 4.4분기 4.32배 차이가 났으나 올 3.4분기에는 5.50배로 격차가 커졌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0.283에서 지난해 0.317로 확대됐다.

상위 20%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는 20대 80 사회가 도래한 것.


6. 문화산업 부상 =영화 쉬리를 필두로 8백만 인파를 끌어모은 친구, 로열티를 받고 할리우드에 수출되는 조폭마누라 등 대박을 터뜨린 영화가 속출하면서 충무로의 투자클럽과 영화투자 벤처도 선보였다.

가수 음반사업자도 대박을 꿈꾸며 '펀딩'(자금모으기)에 나선다.


7. 대마불사 신화 소멸 =대우그룹의 패망으로 대마불사 신화도 무너졌다.

은행도 문을 닫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도 중대 변화의 하나다.

민영화와 국부유출은 여전한 토론거리다.

"무늬만 민영화"니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한전이 6개 발전 자회사를 쪼갰고 포철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등 거대 국영기업과 크고 작은 공사의 지분이 민간으로 넘어갔다.


8. 벤처신드롬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신경제의 침체와 더불어 지금은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민화 전하진씨 같은 벤처 1세대들은 어느새 무대 뒤로 멀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심각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벤처 불길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9. 불투명해진 미래 =사회 전체가 불확실해졌다.

직장인들은 노후문제가 걱정이고 젊은이들은 직장생활 자체에 회의적이다.

사회초년병들은 20년 벌어 나머지 40년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일할 기회는 줄어들지만 인생 설계는 더욱 어려워진다.

미래예측이 어렵기는 기업도 마찬가지.저성장시대에 경기예측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기업과 창업희망자는 신규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10. 해외의존 심화 =외국인들은 거래소 상장주식의 37%(92조원, 11월27일 기준)를 가지고 있다.

97년말 14.6%에 비해 2.6배나 높아진 것.

외국인들은 코스닥 등록주식도 10%(5조원)나 갖고 있다.

'지식산업'이 부각되면서 컨설팅 회사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은 외국인과 해외파들이 휩쓸고 있다.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처럼 외국인이 은행장 등으로 전면에 나선 것은 더이상 이국적이지 않다.

하영구 한미은행장, 강정원 서울은행장 등을 비롯한 씨티은행 출신들의 약진도 돋보인다.

일각에서는 "좌파성향 지식인과 외국계의 동거시대"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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